대법 “장애 심하지 않아도 ‘장애인강간죄’ 적용 가능”

입력 2022-11-23 15:40
대법원 모습. 뉴시스

지적장애 3급인 피해자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70대가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피해자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있는 정도의 장애를 가진 경우라도 상황에 따라 가해자를 장애인강간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봤다. 다만 이 사건에선 가해자가 피해자의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 상태를 인지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장애인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78)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3일 밝혔다.

A씨는 2018년 무료급식소에서 알게 된 피해자 B씨(46)를 다섯 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A씨는 “우리 집에 가서 청소 좀 하자”며 지적장애 3급인 B씨를 집으로 불러들여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피해자가 지적장애 3급인 점, 한글을 읽고 쓰는데 어려움이 있고 숫자와 관련된 구분 개념이 매우 부족한 점, 성관계 전후의 정황 등에 비춰 볼 때 A씨가 B씨를 ‘성적 자기결정권을 주체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여성’으로 인식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2심에서 무죄로 판결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피해자의 정신장애 정도를 근거로 B씨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상태는 아니었다고 판단했다. 언어와 숫자 개념이 다소 부족하지만 피해자에게 결혼과 임신경험이 있고, 정상적인 성관계와 성폭력을 명확히 구분하여 진술한다는 점도 무죄의 근거가 됐다.

대법원은 장애인강간죄 성립 여부를 판단할 때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지 못할 정도의 장애’인지가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건 아니라고 판시했다. 장애 정도와 피해자 가해자의 관계, 행위방식 등 여러 사정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대법원은 2심의 무죄 결론은 그대로 유지했다. 대법원은 “A씨가 이 사건 발생 1년 전부터 B씨를 만나면 심부름을 시키고 용돈이나 먹을 것을 주는 등 알고 지냈고, 집을 청소해달라며 데려가 성폭행한 뒤 먹을 것이나 돈을 준 사실을 알 수 있다”며 “A씨로서는 B씨가 장애로 인해 항거불능·항거곤란 상태에 있었음을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