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로 숨진 배우 고(故) 이지한씨의 어머니 조미은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유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라고 답했다. 조씨는 앞선 윤석열 대통령의 ‘조계종 사과’에 대해서는 “와닿지 않았다. 방송용 사과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또 최근 유가족과 부상자 등에 대한 국가배상이 논의되는 것에는 “생각해본 적도 없다”고 했다.
“아들 방 물건 아직도… 대통령 사과와 진상규명을”
조씨는 22일 KBS 인터뷰 요청에 어렵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아직도 아들의 방에 보일러를 틀고 있다고 한다. 조씨는 “보일러뿐만이 아니라 아들 방에 있는 물건을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며 “아들이 키우던 깜지라는 거북이에게 매일 아침밥을 주면서 ‘깜지야 밥 먹자. 근데 오늘 너를 키운 오빠가 없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네 밥을 줘야 돼’ 하면서 지금까지 말을 붙인다”고 했다.그는 “아직까지 지한이가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지 않다. 그만큼 슬픔이 아직…”이라며 “진짜 지한이가 없나(싶다). 아직은 아무것도. 제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실감이 당연히 안 나고, 밤이면 구둣발 소리가 나면 ‘어? 얘가 촬영을 마치고 들어오는 건가? 그런 생각에 잠들 수도 없고, 환청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조씨는 유가족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라고 했다. 그는 “유가족과 부상자들을 지금이라도 모아놓고 진심 어린 사과 한마디, 그거라고 생각한다. 그다음에 공간을 만들어서 서로 위로하고 충분히 울 수 있는 시간을 주시라. 추모할 수 있는 공간을 주시라. 영정 사진도 위패도 없는 곳에다 국화꽃을 헌화하며 애도한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울러 조씨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저희 아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몇 시에 갔는지, 어느 병원에 있었는지, 제대로 과정을 아는 분이 부모조차 없다”며 “왜 나라에서 그런 사소한 과정조차 부모에게 설명해주지 않는 거냐”고 따졌다.
윤 대통령이 앞서 했던 공식 사과에 대해서는 “조계종에서 이뤄진 사과는 저희에게 와닿지 않았다. 방송용 사과 아닌가”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사고 추모 위령 법회’에 참석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너무나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사과했다.
조씨는 “조계종에서 대통령이 한 말이 사과였나? 유가족들이 사과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나? 아무리 더듬어 생각해봐도 사과를 받은 적은 없는 것 같다”며 “10월 29일이 참사일이라면 적어도 30일, 31일에는 ‘못 살펴서 미안하다, 돌봐주지 못해서 죄송하다, 얼마나 심려가 깊으시냐, 헤아릴 수 없다’는 유가족들에 대한 사과가 발 빠르게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10조라도 합당하겠나…악플, 비수됐다”
언론 인터뷰에 나서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저는 제 슬픔이 가장 슬픈 슬픔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렵게 유가족들을 연락해서 만나보니 제가 슬픈 건 슬픈 것도 아니었다. 다른 분들 슬픔이 제 슬픔보다 훨씬 더 깊었다”며 “그분들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다가, 그래도 지한이는 이름이라도 국민들이 좀 알고 있으니까 나라도 나서서 이 참사를 알려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국가배상 논의에 대해서는 “이거 줄 테니까 위안 삼아서 그만 진상규명 외치고 가만히 있으라는 뇌물인가”라며 “생각해본 적도 없고, 10조를 받아도 그게 국가배상에 합당한 금액인가 생각할 정도”라고 했다. 조씨는 “뇌물이라면 받아볼까요. 그렇게 하고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을까요”라며 “그런 뇌물이면 필요 없다”고 덧붙였다.
가장 힘들었던 점에 대해서는 “악성 댓글이 제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며 “왜 갔냐니, 왜 잡지 못 했냐니. 왜 다 큰 성인을 잡아야 하나. 얼마든지 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물론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5000만분의 1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래도 그건 아니다”고 말했다.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101’에 참가했던 이지한은 데뷔조에선 탈락했지만 이후 웹드라마 ‘오늘도 남현한 하루’에 출연하며 배우의 꿈을 키웠다. 그는 2023년 방송 예정인 MBC 드라마 ‘꼭두의 계절’에 캐스팅돼 지상파 데뷔를 앞둔 상황이었다.
한편 대통령실은 22일 대변인실 공지를 통해 “대통령실이 유가족과 부상자에 대한 보상을 위한 특별법 제정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를 부인했다. 대통령실은 “먼저 이태원 참사 원인에 대한 철저한 수사가 이뤄지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자와 책임 범위를 명확히 하는 것이 우선”이라며 “그래야만 유가족들이 정당한 법적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