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축구대표팀 주장 겸 수비수 에산 하즈사피가 국제축구연맹(FIFA) 공식 기자회견에서 자국의 ‘히잡 의문사’ 사건과 이에 반발한 반정부 시위를 언급했다. 그는 국민에 대한 지지 입장을 밝히면서 “조국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하즈사피는 20일(현지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월드컵 기자회견 중 “우리나라에서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한다. 대표팀은 그들을 지지한다. 함께 아파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AP통신이 보도했다.
이 기자회견은 2022 카타르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을 하루 앞두고 마련되는 FIFA 주관의 공식석상이다. 선수나 지도자는 통상 이 자리에서 자국의 정치적 상황을 말하지 않지만, 하즈사피는 소신 발언을 하는 용기를 냈다. 정부에 대한 비판, 반정부 시위에 대한 정당성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말한 건 고통을 받는 국민이었다.
하즈사피는 “우리나라의 상황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며 “이란 대표팀이 지금 이곳(카타르)에 있지만, 우리는 국민의 목소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의 모든 능력은 국민을 위한 것”이라며 “우리는 싸워야 한다. 최선의 경기력을 보여야 하고, 골을 넣어 이란 국민과 유족에게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이란 반정부 시위는 지난 9월 17일 시작됐다.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지난 9월 13일 이란 수도 테헤란 도심에서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도순찰대에 의해 체포돼 조사를 받던 같은 달 16일 갑자기 쓰러졌고,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사망했다. 이로 인해 국민이 봉기했다.
시위는 반정부 구호를 끌어냈고, 군·경의 탄압과 맞물려 유혈사태로 번졌다. 경찰이 주택에 최루탄을 쏘고 창문을 향해 사격하는 장면이 SNS를 타고 전해지면서 이란 정부에 대한 세계적 비판 여론이 확산됐다. 당시 시위대가 군·경에 저항해 군용 차량에 불을 지르고, 여성의 복장을 검사하는 지도순찰대 본부를 폭파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이란 축구대표팀 간판 사르다르 아즈문은 당시 SNS에 “이란 여성과 민중을 죽이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이에 대한 처벌이 국가대표 제외라면, 그것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겠다”며 이란 정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란은 한국시간으로 21일 밤 10시 카타르 도하 칼리파 국제경기장에서 잉글랜드와 월드컵 조별리그 B조 1차전을 갖는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개러스 사우스게이트 감독은 경기 하루 전인 이날 기자회견에서 개최국 카타르의 인권 의식에 저항하는 취지의 무릎 꿇기 퍼포먼스를 예고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