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당시 현장 지휘책임자였던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총경)을 21일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했다.
이 전 서장은 이날 오전 8시45분쯤 특수본 조사실이 있는 서울경찰청 마포수사청사에 출석했다.
그는 취재진 앞에서 “경찰서장으로서 다시 한번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 평생 죄인의 심정으로 살겠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어 참사 현장에 늦게 도착한 이유와 기동대 요청 여부에 관한 질문을 받자 “세부적인 부분은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다.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사실대로 말씀드리겠다”고 답한 뒤 조사실로 들어갔다.
이 전 서장은 핼러윈 기간 인파가 몰릴 것으로 충분히 예상되는데도 사전 조치를 하지 않고, 참사 발생 직후에도 차량 이동을 고집하며 관용차에서 50여분을 허비하는 등 업무를 저버린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직무유기)를 받는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에게 사고 현장에 뒤늦게 도착한 이유와 경찰 지휘부에 보고를 지연한 경위, 기동대 배치 요청 등 핼러윈 사전 대비는 어떻게 했는지 등을 물을 계획이다.
이 전 서장은 참사 발생 15분 전인 오후 10시쯤 이태원 참사 현장에서 도보 10분 거리인 녹사평역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작 현장 인근인 이태원파출소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1시5분쯤으로 파악됐다.
그는 이와 관련해 지난 16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 증인으로 출석해 “이태원 참사 과정에서 단 1건의 보고도 받지 못했다. 참사 상황을 알게 된 시점은 오후 11시쯤이었다”고 말했다. 오후 10시15분 사고가 발생한 이후에도 50여분간 관용차를 타고 시간을 허비한 것에 대해서도 “그때까지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보고를 늦게 받았을 뿐 고의로 직무를 저버린 게 아니라는 취지다.
이 전 서장은 또 용산서가 서울경찰청에 기동대 투입을 사전에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난 7일 국회에 출석한 김광호 서울경찰청장이 기동대 투입과 관련해 “용산서 차원에서 요청은 없었다”고 밝힌 것을 반박한 것이다.
특수본은 이 전 서장이 참사 발생 직후 현장에 도착했다는 내용으로 상황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의혹, 이 전 서장의 주장대로 용산서의 기동대 배치 요청이 있었는지 사실관계 여부도 확인하고 있다.
다만 특수본은 압수물 분석과 참고인 조사에서 용산서가 기동대를 요청했다는 명확한 근거를 확인하지 못했다. 만일 수사에서 이 전 서장의 국회 증언이 거짓으로 확인되면 국회증언감정법상 위증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
최성범(52) 용산소방서장도 이날 오전 10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했다. 최 서장은 참사 직전 경찰의 공동대응 요청에도 출동하지 않고 사고 직후에는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아 인명피해를 키운 혐의(업무상 과실치사상)를 받는다.
사고 당시 현장 지휘자인 이 전 서장과 최 서장은 이번 참사의 1차적 책임을 규명할 핵심 인물로 꼽힌다.
특수본은 최 서장을 상대로 수십명이 심정지 상태로 심폐소생술(CPR)을 받고 있는데도 신속하게 대응 2단계를 발령하지 않은 이유를 추궁할 방침이다. 또 용산소방서가 핼러윈을 앞두고 작성한 ‘2022년 핼러윈 데이 소방안전대책’ 문건을 토대로 사고 당일 안전 근무조가 근무 장소를 준수했는지도 살펴보고 있다.
송태화 기자 alv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