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 정기예금(12개월) 금리가 연 5%를 돌파하는 등 수신 금리 인상 경쟁이 치열해지자 금융당국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시중 자금이 위험 자산에서 안정 자신인 은행 예금으로 쏠리는 ‘역머니무브’ 현상이 이어져 유동성 부족 현상이 야기되는 것은 물론 대출 금리 인상으로까지 이어져 가계와 기업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지난 20일 “예금 금리가 올라가면서 대출 금리가 따라 올라가는 측면이 있다”며 “예금 금리 인상 경쟁을 자제해달라고 은행권에 얘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시장금리가 상승 기조여서 예금 금리도 이를 거스르기 어려운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며 “금리 조정을 너무 기계적으로 적용하지 말아 달라는 차원”이라고 부연했다.
금융당국이 은행에 예금 금리 인상을 자제해달라고 강조하는 것은 일단 은행이 시중 자금을 빨아들여 제2금융권의 유동성 부족을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더 근원적인 배경은 은행의 예금 금리 인상이 대출 금리 인상으로 이어져 고물가와 고금리로 고통받는 가계와 기업의 어려움을 가중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은행권 관계자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 산정 요인 중 저축성 수신상품 금리의 기여도가 80% 이상으로 사실상 절대적”이라며 “예금 금리를 인상하면 대출 금리도 시차를 두고 상승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코픽스는 국내 8개 은행이 조달한 자금의 가중평균금리로 변동금리형 주택담보대출 금리 기준이 된다. 지난 15일 공시된 10월 신규 취급액 기준 코픽스는 3.98%로 공시가 시작된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월간 상승 폭(0.58% 포인트) 역시 가장 컸는데, 이는 9월 은행권 수신금리 인상을 반영한 것이다. 새 코픽스가 공시된 직후 주요 시중은행의 신규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의 금리 상단은 7%대로 오른 상태다.
뿐만 아니라 최근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5%대까지 올랐다. 세계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이후 1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일부 저축은행은 연 7%대의 정기예금 상품까지 내놓는 등 시중은행의 수신 경쟁이 치열하다. 예금 금리가 높아지면 자금은 자연스럽게 은행으로 몰려들면서 ‘역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한편 은행권은 은행채 발행이 제한된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예금 경쟁까지 제동을 걸고 나섬에 따라 건전성 규제 추가 완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은 매주 열리는 은행권 시장점검 실무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중장기 유동성 지표인 순안정자금조달비율(NSFR) 등 건전성 규제의 완화를 추가로 건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NSFR은 유동성커버리지비율(LCR) 규제 등과 함께 바젤Ⅲ 체제 은행감독규정에 따라 도입된 유동성 규제다.
앞서 금융당국은 자금시장 경색 대응책으로 은행의 예대율 규제를 완화하고 LCR 규제 정상화를 유예하기로 한 바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제감독기준의 세부 요건을 바꿔 운용하면 국내 은행의 신인도에 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다”면서도 “은행권의 규제 개선 요청을 계속해서 받으면서 정책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