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윤상의 세상만사]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기 힘든 세상

입력 2022-11-20 19:43

여기 두 사람의 고단한 삶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그는 1급 중증 장애인이자 장애인 돌봄 단체의 대표이다. 25년 넘는 기간 동안 오직 사명감 하나로 장애인 돌봄일을 해오면서 숱한 좌절감도 겪었지만, 천직으로 생각하며 묵묵히 견뎌왔다. 예전에는 후원금과 자비로 단체를 끌어가야 해서 돌봄일을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달고 살았지만, 요즘은 자치단체에서 소소하게 지원을 해줘서 그래도 많이 나아졌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경제적 어려움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그가 경제적 어려움보다 견디기 힘든 순간은 정작 다른 데 있다. 일부 장애인 돌봄 단체에서 발생하는 폭력이나 횡령 등의 범죄가 언론에 보도될 때면 그도 함께 죄인이 된 양 머리를 조아리며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할 때는 바로 그때이다.

‘그 일’이 그에게 일어났다. 아니, 아직은 일어났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다. 심한 지적 장애가 있는 장애인의 어머니가 돌봄 선생님 중 한 명이 자신의 자식을 폭행했다고 경찰에 신고했다. 그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하기 전에 그에게 찾아와 사과와 피해보상을 요구한 바 있었다. 그는 가해자로 지목된 선생님을 불러서 자초지종을 들었으나, 그 선생님은 폭행은 절대 없었다고 극구 항변하였다. 그는 여러 가지 정황들을 고려해서 선생님의 말을 믿어보기로 하였다.

그러자 장애인 관련 언론에서 악의적인 기사가 났고, 한 장애인단체에서는 자치단체 앞에서 1인 시위를 진행하면서 자치단체에 그가 운영하는 단체에 대한 감사를 요청했다. 민원에 민감한 자치단체는 감사를 시작했다. 경찰의 수사도 진행 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그는 다른 사람도 아닌 자신의 일로 머리를 조아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당장 이 일을 그만두고 싶다.

#그녀의 아들은 어려서부터 류머티즘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경제적 형편이 넉넉하지 않음에도 그녀는 아들의 치료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치료를 잘한다는 소문만 들어도 그곳이 어느 곳에 있든지 찾아가서 치료를 받게 했다. 그렇게 10년 넘는 세월을 아들의 치료를 위해 노력한 결과 아들의 증상은 많이 호전되었다.

아들은 어느새 성장하여 군대에 가기 위한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녀는 아들의 상태가 군대에서 적응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군의관에게 아들의 현재 병세와 앞으로 병세가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에 대한 의사의 소견서를 제출했다. 그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들은 현역 판정을 받아 전방부대에 입소했다. 그러나 아들의 병세는 강직성 척추염으로 악화되었고, 더 이상 군 복무를 할 수 없게 되어 결국 만기제대를 3개월 남겨두고 소위 의가사 제대를 했다.

남달리 국가에 대한 믿음이 강했던 그녀는 국가가 더욱 악화된 몸으로 돌아온 아들을 당연히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보훈대상자 신청을 했으나, 국가는 거부했다. 입대해서 발병한 것이 아니라 기왕에 질병이 있는 몸으로 입대해 상태가 악화된 것뿐이라는 이유로. 그녀가 보훈처의 결정문을 움켜쥐며 중얼거린다. “병이 있어 입대하기 힘들다고 그렇게 호소했는데, 이제 와서 입대 전에 병세가 있었기 때문에 돌봐줄 수 없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로 살아가기 힘든 사회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 및 칼럼은 국민일보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엄윤상(법무법인 드림) 대표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