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는 무용보다 위험하지만, 무용과 같은 혈통이다.”
지난 2014년 프랑스 리용 댄스 비엔날레 예술감독이던 도미니크 에르비유가 축제 프로그램을 설명하면서 인용한 화가 페르낭 레제(1881~1955)의 말이다. 당시 리용 댄스 비엔날레는 ‘대중적이고 실험적인’이라는 표제 아래 다수의 서커스 아티스트와 단체를 초청했었다. 서커스를 사랑해서 자주 그렸던 레제의 말을 빌려 에르비유는 서커스가 안무적인 요소를 가지는 등 무용과 강하게 연결돼 있다는 것을 강조했다.
프랑스에서는 1970년대부터 동물 곡예와 곡예 중심의 전통적인 서커스와 다른 새로운 서커스(프랑스어로 서크 누보)가 태동했다. 특히 1984년 설립된 국립서커스예술센터는 다양한 장르와 결합해 다채로운 스펙트럼을 가진 서커스를 등장하도록 만들었다. 프랑스 현대무용계는 이런 서커스를 점차 받아들이기 시작했는데, 2014년 리용 댄스 비엔날레는 그런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축제에 초대된 서커스 아티스트들 가운데 요안 부르주아는 신작 ‘기울어진 사람들’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오는 25~27일 LG아트센터 서울 SIGNATURE홀에서 볼 수 있는 ‘기울어진 사람들’은 회전하는 무대와 떨어지지 않으려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를 둘러싼 다양한 힘의 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무용수들을 극한으로 몰아붙이는 연출과 안무는 관객들에게 강렬한 긴장감과 몰입감을 선사한다. 이 작품은 LG아트센터 서울의 개관 페스티벌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기울어진 사람들’과 함께 지난 10월 공개된 부르주아의 솔로작 ‘오프닝2’(U+ 스테이지)도 함께 선보인다. ‘오프닝2’는 부르주아의 대표적 퍼포먼스 가운데 하나로 무용수가 계단에서 바닥으로 떨어진 후 트램펄린에 튕겨져 다시 계단 위로 올라서는 움직임을 반복한다. 이 퍼포먼스는 그동안 ‘푸가 트램펄린’ 등 부르주아의 다양한 작품에서 변주됐다.
부르주아는 서커스에서 시작했지만 현대무용을 공부하면서 양쪽의 경계를 무너뜨린 인물이다. 어린 시절 서커스 학교를 다닌 그는 높은 곳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중력에 반응하는 신체에 흥미를 느꼈다. 이후 국립서커스예술센터에 진학한 그는 국립현대무용센터도 함께 다니면서 현대무용을 동시에 수학했다. 졸업 후 마기 마랭 컴퍼니에서 4년간 무용수 생활을 거쳐 안무가로 나선 그는 2010년 자신의 이름을 딴 요안 부르주아 컴퍼니를 세우고 본격적으로 작품을 선보였다.
‘기울어진 사람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그는 이후에도 중력을 테마로 한 일련의 작품들로 평단과 대중을 사로잡았다. 트램펄린, 턴테이블, 추, 시소 등을 활용한 그의 공연들은 특정 장르로 규정하기 어려운 복합적이지만 미학적으로 독보적인 완성도를 자랑한다. 그런 그에게는 다양한 분야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애플 에어팟, 패션브랜드 갭, LG전자 등의 광고부터 콜드플레이, 해리 스타일스, FKA 트위그스 등 대중가수의 뮤직비디오 그리고 루이뷔통, 티파니앤코의 패션쇼/카탈로그에서도 그의 안무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2016년 현대무용 안무가 라시드 우람단과 함께 프랑스 그르노블 국립안무센터 예술감독으로 임명되며 프랑스 국립기관의 예술감독이 된 최초의 서커스 아티스트라는 기록을 세웠다. 2017년 프랑스 파리 팡테옹에서 펼친 퍼포먼스 ‘역사의 역학’과 이를 영상화한 댄스 필름 ‘위대한 유령’은 그의 예술세계를 잘 보여준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지난해 표절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됐다. 지난해 2월 동영상 플랫폼에 그의 작품들에서 발췌한 12개 시퀀스와 클로에 모글리아 등 서커스 예술가 10명의 작품 사이에 유사성을 보여주는 10분짜리 동영상이 익명으로 올라온 것이다. 이에 대해 부르주아는 동영상에 대해 “짧은 단편들을 악의적으로 조작한 편집”이라며 표절을 부인했다. 표절 논란이 법적 송사로 번지지는 않았지만, 모글리아 등 여러 서커스 예술가들이 동영상을 지지하는 글을 잇따라 SNS에 올림으로써 부르주아에 타격을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르노블 국립안무센터는 공동 예술감독 우람단이 2022-2023시즌부터 파리 샤이요 극장 예술감독으로 임명돼 떠난 이후에도 부르주아를 단독 예술감독으로 결정함으로써 그에 대한 신임을 재확인 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