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이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에서 맥주를 팔기로 한 계획을 개막 이틀 전 전격 철회하면서 후원사들 사이에서 불만이 나오고 있다.
18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여러 월드컵 후원사들이 갑작스러운 이번 결정을 우려스럽게 보고 있으며 일부는 FIFA에 직접 문제를 제기한 상황이다.
후원사 버드와이저는 ‘경기장 맥주 금지’ 정책을 통보받자 공식 트위터에 “흠, 이러면 곤란한데(Well, this is awkward)…”라며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현재 이 게시물은 삭제된 상태다. 버드와이저뿐만 아니라 다른 주요 후원사 역시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주요 후원사의 관계자는 가디언에 “많은 후원사가 여러 측면에서 FIFA에 실망했다”며 “모두가 어떤 식으로든 불만을 품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계약상 이런 결정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파악하기 위한 ‘정비’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가디언은 이러한 멘트가 후원사들이 이번 사태가 잠재적으로 계약 위반인지 따져봤음을 내비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앞서 FIFA는 지난18일 “개최국 당국과의 논의에 따라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주위에서 맥주 판매 지점을 제거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다만 후원사 버드와이저의 무알콜 맥주인 ‘버드 제로’의 경우에는 계속 경기장에서 판매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당초에 이번 대회에서는 경기 시작 전후로 경기장 인근 지정 구역에서 맥주를 팔기로 했었다.
이슬람 국가인 카타르는 주류 판매 및 음주가 금지된 나라다. 하지만 ‘지구촌 축제’ 월드컵이 열리는 만큼 이 기간에는 경기 입장권 소지자를 상대로 경기장 외부 지정 구역에서 맥주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즉 경기장 안에서 경기를 보며 음주할 수는 없어도 경기 시작 전에 지정 구역에서 술을 마시고 경기장 안으로 들어갈 수는 있는 셈이었다.
하지만 개최국인 카타르는 FIFA 측에 경기장 주위 맥주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을 계속 개진했다.
버드와이저에는 경기장 주위 맥주 판매 지역을 눈에 덜 띄는 곳으로 변경하라고 통보하기도 했다. ‘전격 금지’ 결정이 나오기 사흘 전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카타르 정부가 경기장 내 맥주 판매 부스를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이동하라고 명령했다고 보도했다. 매체는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셰이크 타밈 빈 하마드 알사니 군주의 친형이 이런 변화를 주도했다고 부연했다.
FIFA는 대회 공식 맥주인 버드와이저 제조사인 앤하이저부시 인베브와 1985년부터 40년 가까이 후원 관계를 맺어왔다.
미국의 마케팅 업체 ‘에스콰이어 디지털’의 애런 솔로몬 수석 법률 애널리스트는 뉴욕포스트에 “경기장에서 맥주를 파는 건 합의된 사안인 만큼 이번 사태는 명백한 계약 위반이다.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버드와이저 측이 법적 다툼 끝에 후원 계약을 끝내지는 않을 것으로 봤다. 계약 파기 시 다음 대회의 개최지로 지정된 북중미 지역에서의 후원 마케팅까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영국 데이터 분석·컨설팅 업체의 스포츠 분석가 콘래드 와이세크는 미국 CNN방송에 “2026년 미국에서 열리는 대회에서 크게 보상받을 수 있는 만큼 버드와이저가 신중히 행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번에 (FIFA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건 다른 맥주 브랜드에게 길을 열어주는 꼴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월드컵 개막 직전 FIFA가 방침을 바꿈에 따라 경기장을 찾는 팬들은 맥주로 목마름을 달랠 수 없게 됐다. 20일 개막하는 월드컵을 관람하기 위해 카타르를 찾은 축구 팬 수천 명 역시 이날 도하 공항에 착륙해서야 해당 소식을 접한 것으로 전해졌다.
경기장 주위 맥주 판매가 금지되면서 음주가 가능한 곳은 도하 시내 ‘팬 구역’과 외국인들을 상대로 술을 파는 일부 호텔이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