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정진상 더불어민주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 변호인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검찰청사 기자실 내 기자회견을 불허했다. 이에 대해 정 실장 측 변호인단과 민주당 의원들은 ‘제2의 전용기 사태’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정 실장 측 변호인단은 유동규 전 본부장의 진술 외에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유 전 본부장과의 대질신문을 요청한 다음날 곧바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며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을 위해 구속영장이 기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김세용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정 실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친 뒤 19일 오전 2시50분쯤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검찰은 특가법상 뇌물, 부정처사후수뢰, 부패방지법 위반, 증거인멸교사 등 혐의로 정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정 실장의 영장실질심사는 8시간이 넘게 걸렸다. 이는 ‘역대 최장’인 박근혜 전 대통령의 심문 시간인 8시간40분보다는 짧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심문 시간인 7시간30분보다 길었다. 정 실장은 이날 심문을 마치고 나오면서 기다리던 취재진 앞에 서서 “(심사에) 성실히 임했다. 어떤 탄압 속에서도 역사와 민주주의는 발전할 것이다. 우리 국민은 계속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심문에 앞서 내놨던 입장문에서 “이재명의 결백함은 드러날 것”이라고 언급한 이유에 대해 정 실장은 “다음에 말씀드리겠다”고 답한 뒤 준비된 차량에 올랐다. 심사 직후 정 실장 변호인단과 김의겸·박찬대 민주당 의원 등은 서울고등검찰청 앞에서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 실장 측 법률대리인인 이건태 변호사는 영장실질심사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사건의 핵심은 유동규의 변경된 진술이 과연 신빙성있는가라고 생각한다”며 “합리성, 객관성, 상당성, 일관성, 진술 변경에 따른 이익이 누구에게 있는지, 진행 중인 수사와 관련이 있는지, 유동규는 석방된 검찰의 방침 등을 검토할 때 변경된 진술은 신빙성 없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방어권 보호가 절실히 필요하므로 불구속 수사와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영장을 기각해달라고 말씀드렸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15일 검찰 조사 당시 정 실장이 유 전 본부장과 대질조사를 신청했고 변호인은 85쪽 분량의 의견서를 제출했다”며 “그런데 검찰은 그 다음날 곧장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이미 방향을 정해놓고 통과의례로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또 검찰이 유 전 본부장의 진술 외에는 혐의를 입증할만한 증거를 내놓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변호인이 볼 때는 검찰이 제시한 주장 중 객관적 물증을 발견하지 못했다”며 “핵심 당사자의 진술이나 녹취록에 나오는 말 등이 주로 검찰이 주장하는 증거”였다고 주장했다.
변호인단은 “영장 기재 범죄사실이 유 전 본부장 진술에 근거하고 있는데 다른 사람들의 진술도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들었다는 것이다. 유 전 본부장에게서 (말이) 전해지는 부분은 형사소송법상 전문증거에 해당하기 때문에 별도의 독립된 증거가치를 갖고 있지 않다”고 언급했다.
변호인단은 검찰이 의심하는 증거인멸교사 혐의도 부인했다. 검찰은 압수수색 당시 유 전 본부장이 ‘휴대전화를 버리라’고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취재진은 ‘압수수색을 어떻게 정 실장이 미리 알았는가’라고 물었고 이에 변호인단은 “어떻게 미리 알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하며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이어 “유 전 본부장이 증거인멸교사 자수했는데 유 전 본부장이 자신의 증거를 인멸하기 위해 던졌을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답했다.
당초 변호인단은 민주당 의원들과 서울고검 기자실에서 관련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었지만 대검찰청이 불허 방침을 내리며 장소가 바뀌었다. 대검은 “이번 기자회견을 허용하면 앞으로 일반인이나 민원인, 개인 유튜버 등이 기자회견을 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는 이유로 불허했다.
법조기자들은 내부 논의를 거쳐 “기자실은 원칙적으로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며 취재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며 “공적 관심사의 경우 인위적 제한 없이 취재가 허용돼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그러나 대검은 이날 오후 1시쯤 민원인이 드나드는 고검 입구를 펜스로 막고 평소보다 방호 직원수를 늘려 배치했다. 출입증이 있는 이들만 뒷문을 통해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에 대해 김의겸·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이날 논평을 내고 “준사법기관으로서 최소한의 공정성마저 내던진 ‘제2의 전용기 사태’”라며 “자신들의 원칙과 전례조차 무시하고 변호인단과 국회의원의 회견 자체를 불허한 검찰의 오만은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전용기 탑승까지 배제시키는 대통령실의 편협함과 다름이 없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검찰청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고 민원인들의 방문은 위험물을 소지한 경우가 아니라면 자유롭게 이뤄진다”면서 “변호인단과 국회의원의 자회견이 어떠한 위험이 되는 것인지, 이원석 검찰총장은 답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또 “(해당 기자회견은) 출입기자단과 사전협의 끝에 성사된 것”이라면서 “그동안 이원석 총장은 ‘서울고검 출입기자실은 기자단이 자율적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해왔는데 검찰의 마음에 들지 않는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하니 회견 자체가 ‘부적절하다’며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윤석열 정부의 모습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과거에도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한 관련인의 기자실 기자회견은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면서 “김경수 당시 노무현재단 본부장의 NLL회의록 삭제 의혹에 대한 입장 발표, BBK 주가조작 피해자들의 회견, ‘간첩조작사건’으로 내몰린 유우성 씨의 수사검사 고소 기자회견 등이 바로 그것”이라고 열거했다. 이어 “준사법기관으로서 최소한의 공정성마저 내던진 검찰에 대해, 민주당은 끝까지 맞서 실체적 진실을 반드시 지켜내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 실장은 2013~2020년 이 대표를 가까이서 보좌하며 대장동 일당에게 각종 사업 추진상 편의를 제공한 대가로 1억4000만원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대장동 사업자로 선정해준 대가로 김만배씨 보통주 지분의 24.5%(세후 428억원)를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구속기소),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나눠 갖기로 약정한 혐의도 있다.
여기에 2013∼2017년 성남시와 성남도시개발공사의 내부 비밀을 대장동 일당에 흘려 위례신도시 개발 사업의 사업자로 선정되도록 하고 시행과 시공을 맡은 호반건설이 개발이익 210억원 상당을 받게 한 혐의도 있다. 정 실장은 또 지난해 9월 검찰의 압수수색이 임박하자 유 전 본부장에게 휴대전화를 창밖으로 버리라고 지시해 증거인멸을 교사한 혐의도 받고 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