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인 김상훈 의원이 지도부 공개회의에서 MBC 광고기업 제품의 불매 운동을 사실상 촉구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이에 MBC와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계는 여당이 언론 탄압을 노골화하고 있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김 의원은 17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비대위원회의에서 MBC를 향해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에 악의적인 보도와 의도적인 비난으로 뉴스를 채워오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MBC 프로그램은 유력 대기업 광고로 도배돼 막대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많은 대기업이 초대형 광고주로 MBC의 물주를 자임하고 있다”며 “모 대기업은 수십년간 MBC 메인뉴스에 시보 광고를 몰아주고 주요 프로그램에 광고비를 대고 있으며 2005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MBC 메인뉴스 앵커가 해당 기업 임원으로 이직했다”고 덧붙였다.
김 의원은 이어 “MBC를 편파·왜곡방송으로 규정하고 MBC 광고기업제품 불매운동에 동참 서명한 사람들이 33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며 MBC 상대 광고 중단 운동도 언급했다. 김 의원은 “이분들은 사회적 기업이자 국민기업인 삼성 등이 MBC에 광고를 제공하는 것을 즉각 중단해야 하고 이는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역설한다. 공영방송을 자처하는 MBC와 광고주들은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에 MBC는 즉각 반발했다. MBC는 입장문을 내고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일부 의원들이 급기야 문화방송에 대한 광고 불매 운동을 촉구하고 나섰다”며 “특정 기업 이름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을 협박하는 등 헌법 수호 의무를 지닌 국회의원에게서 자유 시장 질서를 송두리째 부정하는 광고 불매 운동 언급이 나왔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MBC는 또 “권력이 자신의 입맛에 맞지 않는 보도를 한다고 노골적으로 광고주들을 협박하고 위협하는 행위는 견제받지 않는 권력을 꿈꾼다는 자기 고백이자 징표”라며 “국민의힘이 헌법준수와 동시에 자유 시장 경제를 존중함으로써 언론자유를 보장해줄 것을 촉구한다”고 요구했다.
한국지자협회도 해당 발언이 노골적인 광고 탄압이라며 발언을 당장 거두라고 촉구했다. 기자협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MBC에 대한 전용기 탑승 배제, 국세청 추징금 520억 원 부과에 이어 이번엔 광고 탄압”이라며 “이번 사태는 단지 MBC에 대한 광고탄압만이 아니라 정권의 눈 밖에 나면 어느 언론사든 가만두지 않겠다는 시그널이나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기자협회는 “1974년 박정희 군사독재정권 시절 동아일보와 동아방송이 정권의 압력으로 기업 광고가 실리지 못한 사실이 있는데, 마치 역사의 시계가 48년 전으로 되돌아간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제라도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역사의 교훈을 되새기고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시도나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 일개 비대위원 한사람만의 발언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기자협회는 이어 “정부와 여당이 집요하게 MBC를 압박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윤석열 세력에 비판적인 MBC 사장 교체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MBC에 대해 ‘불공정 보도’ 프레임을 씌워 공영방송 MBC부터 장악하겠다는 의도”라고 주장하며 “국민의힘 김상훈 비대위원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하고 당장 비대위원을 사퇴하라”고 촉구했다.
야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임오경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이날 국회 소통관 브리핑룸에서 “집권여당의 지도부라는 사람이 특정 언론사에 대한 광고 중단을 압박하는 충격적이고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을 벌였다”며 “대통령의 욕설을 감춰주지 않았다고 이렇게 치졸하게 복수를 하다니 정말 지독한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임 대변인은 “‘삼성과 여러 기업들이 MBC에 광고로 동력을 제공하는 것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는 국민의힘 김상훈 비대위원의 발언은 용납할 수 없는 언론탄압”이라며 “부당하게 전용기 탑승을 배제하고, 탄압용 세무조사로 520억 원의 추징금을 부과한 것도 부족해서 아예 문이라도 닫게 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비판적인 언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경고는 비단 MBC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모든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겠다는 것이고, 언론이 정권의 눈치를 보도록 만들겠다는 것”이라며 “유신 시대, 5공 시절에나 가능했던 관제 언론을 부활시키려는 윤석열 정권의 언론탄압을 규탄한다. 윤석열 정권은 MBC에 대한 언론탄압을 중단하고,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과 폭력을 즉각 멈추길 바란다”고 했다.
반면 여당에서는 아직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회의 이후 김 비대위원의 발언이 당의 공식입장이냐고 묻는 말에 “김상훈 비대위원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들었다”며 즉답을 피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