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과 통합 2년차로 17일 시행된 202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은 ‘불수능’으로 불렸던 지난해보다는 쉬웠지만 ‘물수능’ 수준은 아니었던 것으로 평가됐다. 최상위권 기준으로 다소 쉬워졌지만 체감난이도에 대한 변수가 커 당락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수학 영역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변별력 있게 출제된 것으로 분석되면서 수험생들의 전체 성적에 큰 영향을 미치는 과목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출제위원장인 박윤봉 충남대 교수는 이날 출제경향 브리핑에서 “올해 2차례 시행된 모의평가 결과에 대한 분석을 토대로 예년 출제기조를 유지하려고 했다”며 “작년부터 EBS 연계율 비중이 축소된 부분이 ‘불수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나 판단해 이번에는 ‘체감 연계도’를 올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국어 “작년보다 쉬웠다…변별력 예년과 비슷”
국어영역의 경우 표준점수가 역대 두번째로 높았을 정도로 난도가 심했던 지난해 수능보다는 다소 쉬워진 것으로 분석됐다. 국어영역의 지난해 표준점수 최고점은 149점이었지만 올해 9월 모의평가에서는 140점으로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국어영역 표준점수 최고점이 작년 수능보다는 9월 모의평가에 가까울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입상담교사단인 김창묵 서울 경신고 교사는 “최상위권에선 예년보다 난도가 다소 하락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중상위권에서는 변별력이 예년과 비슷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그래프까지 해석해야 풀 수 있는 17번은 수험생 입장에선 문제 풀이에 시간이 상당히 소요됐을 것으로 보인다. 소셜미디어 등 온라인에서는 ‘불수능’이었던 지난해 국어에 비하면 올해 국어영역은 '물수능'일 정도로 쉬워 등급 경쟁이 치열해질 것을 걱정하는 반응도 많았다.
공통과목인 독서에서 ‘클라이버의 기초 대사량 연구’를 다룬 과학 지문(14∼17번)과 ‘법령에서의 불확정 개념’을 소재로 한 사회 지문 등 일부 까다로운 문항으로 고득점이 가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선택과목인 ‘화법과 작문’ ‘언어와 매체’ 모두 작년 수능보다 쉽게 출제된 것으로 분석된 가운데 공통과목에서 가장 까다로운 문제로 꼽힌 과학 지문이 자연 계열 수험생들에겐 낯설지 않은 내용이고, 자연 계열 수험생들의 ‘언어와 매체’ 선택 비율도 확대됐기 때문이다.
수학 “작년보다 쉬웠지만…정시 당락 좌우”
수학영역은 역시 어렵게 출제됐던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는 선에서 최상위권 변별력이 다소 낮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조만기 남양주 다산고 교사는 “올해 9월 모의고사와 비교하자면 유사하게, 작년 수능과 비교하면 유사하지만 일부 수험생 입장에서는 조금 쉽다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수학의 경우 지난해 수능 표준점수 최고점이 147점, 올해 9월 모의평가는 145점으로 두 차례 모두 변별력 있는 시험이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영어영역은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약간 쉽게 출제됐지만, 올해 9월 모의평가가 워낙 쉬워 수험생들의 체감난도가 높았을 것으로 분석된다.
공통과목에서는 극한으로 정의된 함수의 연속성과 최솟값을 가질 수 있는 조건을 묻는 14번, 수열의 귀납적 정의를 이용해 최댓값과 최솟값을 구하는 15번, 도함수의 정의와 함수의 최솟값을 이용해 삼차함수의 함숫값을 구하는 22번 등이 까다로운 문제로 꼽혔다. 선택과목은 대체로 공통과목보다는 평이하게 출제된 것으로 분석된다.
고난도로 꼽힌 문제들은 정확한 계산이 필요해 중위권 학생들은 수학 영역에서 시간이 빠듯하게 느꼈을 가능성이 크다. 다만 초고난도 문제의 난도는 낮아져 최상위권은 작년 수능보다 다소 쉽게 느꼈을 수는 있다.
대교협 대입상담교사단은 올해 영어가 변별력은 갖췄지만 작년 수능보다는 다소 쉬워진 것으로 분석했고 강남대성학원과 진학사 역시 전체적으로 지난해보다 약간 쉽게 출제된 것으로 평가했다. 이에 비해 메가스터디는 전체적인 난도가 작년 수능과 비슷하지만 체감난도가 높았을 것으로 분석했고, 종로학원의 경우 문제의 난도 자체가 지난해 수능보다 어려웠다고 평가했다.
수학의 변별력이 유지됐기 때문에 수능 점수가 주요 전형 요소로 작용하는 정시모집에서는 수학이 당락을 가를 핵심 영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선택과목별로 보면 ‘미적분’이나 ‘기하’를 선택한 수험생들의 표준점수가 ‘확률과 통계’를 고른 수험생보다 높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미적분’이나 ‘기하’를 주로 선택하는 자연 계열 학생들이 정시 전형에서 유리해질 가능성이 크다.
영어 “엇갈린 난이도…추론 까다로웠다”
영어 영역은 난이도를 놓고 분석이 엇갈리고 있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 대입상담교사단은 어렵다고 평가된 작년 수능보다 올해는 영어 영역이 다소 쉬워진 것으로 분석했다. 대입상담교사단의 윤희태 서울 영동일고 교사는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영어 영역 출제 경향 분석 인터뷰에서 ”작년 수능보다는 다소 쉽고 올해 9월 모의평가는 다소 어렵게 출제됐다“고 말했다. 다만 윤 교사는 “응시 집단의 수준·구성에 따라 바뀔 수 있지만, 변별력이 확보된 시험”이라며 “(9월 모의평가의 난도보다는) 작년 수능에 가깝다”고 부연했다.
절대평가로 등급만 나오는 영어 영역의 경우 1등급(원점수 90점 이상) 학생 비율은 작년 수능 때 6.25%로 전년(12.66%)의 절반으로 줄었다.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는 이 비율이 5.74%로 나타나 역시 어려운 것으로 평가됐다가 9월 모의평가에서는 16.0%로 급등하며 난도가 급격히 하락했다.
강남대성학원은 작년 수능보다 약간 쉬운 수준으로 출제됐다고 분석했고, 진학사 역시 전체적으로 문장과 어휘의 난도는 다소 어려웠던 작년 수능보다 약간 하향 조정됐다고 평가했다. 이에 비해 메가스터디는 “전체적인 문제의 난도가 작년 수능과 비슷하나 올해 9월 모의평가가 매우 쉬웠기 때문에 체감 난도는 더 높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종로학원의 경우 “어렵게 출제된 지난해 수능보다 더 어렵게 출제됐기 때문에 수험생들이 혼란스러워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문항별로 보면 수험생들이 일반적으로 까다롭게 생각하는 어법 문제인 29번의 경우 평이하게 출제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에 비해 빈칸을 추론하는 34번, 글 순서를 묻는 37번 문제는 내용의 정확한 이해와 높은 수준의 추론 능력을 요구해 수험생 입장에서는 까다롭게 느껴질 여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장을 삽입하는 39번도 친숙하지 않은 소재를 다루고 있어 상위권과 중위권을 가를 문제로 꼽혔다.
작년처럼 선택과목 최고점 따라 유불리 ‘논란’
올해 수능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문·이과 구분 없이 통합수능으로 치러졌다. 국어·수학영역에서 학생들이 공통과목+선택과목을 함께 치르는 방식이다. 선택한 과목에 따라 받을 수 있는 표준점수 최고점이 달라 유불리 논란이 있었는데 이런 현상은 올해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규민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이 문제(선택과목별 유불리 현상)를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공통과목에 응시하는 점수를 활용해 선택과목 점수를 조정함으로써 유불리 문제를 최소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종로학원 임성호 대표는 “가장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국어영역 기초대사량 관련 문제가 이과생에게 유리하게 작용했을 수 있다”며 “선택과목 간 점수 차는 작년보다 더 벌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 수능에는 지난해보다 1791명 줄어든 50만8030명이 지원(원서접수자 기준)했다. 이중 졸업생과 검정고시생을 합한 비율이 31.1%로 1997학년도(33.9%) 이후 26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1교시 결시율은 10.8%로, 실제 응시자수는 45만477명으로 집계됐다.
평가원은 수능이 끝난 직후부터 21일까지 5일간 문제 및 정답에 대한 이의신청을 받아 29일 정답을 확정 발표한다. 성적은 다음달 9일 통지한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