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산골에 있는 기업이라고 정부가 무시하는 것”

입력 2022-11-16 15:12
지난해 11월 영풍 석포제련소의 ‘조업정지 10일’ 처분 이행 당시 석포면 거리에 주민 생존권 보장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 영풍 석포제련소 제공

“불안합니다. 회사가 길게는 반년 동안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다는데...”

16일,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서 아침 출근길에 만난 ㈜영풍 석포제련소 직원 김 모(47)씨는 한숨부터 내쉬었다.

그는 “작년에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받아 공장 가동을 멈췄을 때 회사가 700억원 넘는 적자를 입었다”며 “만약 이번에 추가로 조업정지 60일 처분이 확정되면 그 때는 정말 회사가 감당할 수 없는 타격을 입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직원들이 받을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상북도의 최북단이며, 강원도의 경계와 맞닿아 있는 봉화군 석포면은 경북에서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힌다.

그런데 이 마을에 있는 석포초등학교의 전교생 수는 110명이 넘는다.
봉화군에서 학생 수가 두 번째로 많다. 주민들의 평균 연령도 47세로 다른 동네보다 열 살가량이나 젊다.

이곳에 연 매출 1조3000억원, 상시 고용인원 1300여명(협력업체 포함), 세계 4위 규모의 아연 제련소인 영풍 석포제련소가 있기 때문이다.

이런 석포면의 풍경은 여느 산간 마을처럼 겉보기엔 평화로웠지만, 주민들의 얼굴에는 근심과 걱정이 역력했다. 경북도가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해 내린 조업정지 60일 처분의 적법성을 다루는 항소심 소송이 최근 시작된 탓이다.

지난해 11월 7일 영풍 석포제련소의 ‘조업정지 10일’ 처분 이행을 앞두고 열린 소등식에서 석포면 주민들이 불 꺼진 공장을 향해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 영풍 석포제련소 제공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 모(58·여)씨는 “석포면은 사실상 석포제련소 때문에 먹고 사는 동네”라며 “제련소가 정말로 최소 두 달, 길게는 반년까지 문을 닫게 되면 지역 경제가 심각하게 침체돼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한 경북도의 조업정지 60일 처분 사안의 발단은 20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9년 4월, 환경부 단속반이 제련소의 전해 공정에서 극판 세척수 5㎥, 정수 공정에서 2단계 정화를 마친 폐수 1~2㎥가 각각 설비에서 넘친 것을 적발했다.

당시 설비에서 넘친 폐수들은 이중옹벽조 등 각종 방지시설을 통해 전량 회수돼 다시 공정에 재사용됐고, 공장 바깥으로 유출되지 않았음이 이후 경북도의 청문에서 확인됐다.

그러나 환경부는 물환경보전법 위반으로 보고 법령상 처분권자인 경북도에게 제련소에 조업정지 120일(4개월) 처분을 내릴 것을 요구했다. 제련소가 1년 전인 2018년에 별개의 물환경보전법 위반 사유로 인해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받은 상황에서 2년 내에 위반 사항이 재차 적발됐다는 이유에서였다.

모두 합쳐 6~7㎥의 폐수가 단순 기기 오작동 등으로 설비 바깥으로 잠시 넘쳤으나 전량 회수된 사안에 대해 무려 4개월간의 조업정지 처분을 내리라고 한 것이다.

이에 경북도는 4개월간의 조업정지 처분은 과하다고 판단해 행정안전부 행정협의조정위원회에 협의 조정을 신청했다. 하지만 위원회가 처분기간을 절반으로 감축하라고 권고하면서 경북도는 2020년 12월 제련소에 대해 조업정지 60일(2개월) 처분을 내렸다.

영풍 석포제련소가 있는 봉화군 석포면의 마을 전경. 경북의 최북단 산골 마을이지만 주민 2000여 명이 살고 있다. 초등학교 학생 수는 110여 명으로 봉화에서 두 번째로 많다. 주민 평균 연령은 47세로 다른 동네보다 10살 가량 젊다. 영풍 석포제련소 제공

제련소는 24시간 가동되는 화학, 전해, 용해 등 일관 제조공정의 특성상 조업을 쉽게 멈출 수 없다. 조업 정지 60일 처분 이행 시 사전 준비와 재가동에 필요한 시간까지 포함해 실제로는 6개월 정도 조업이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럴 경우 천문학적인 영업 손실로 인해 회사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
영풍은 지난해 ‘조업정지 10일 처분’을 이행했을 당시 728억원의 영업 손실을 냈다.
만약 조업정지 60일 처분이 확정돼 전후 준비 및 재가동 기간을 포함해 6개월간 공장을 멈출 경우 연간 매출액의 절반 수준인 6000억~7000억원 가량의 매출 손실이 전망된다.

조업 중단 시 직원과 가족들이 거주하는 사원아파트에도 난방과 온수가 끊어져 큰 불편이 예상된다. 사원아파트의 일부 동은 제련소에서 발생하는 열에너지를 이용하는 난방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조업정지 10일 처분 이행 당시 총 560여 가구 중 340여 가구에 난방이 끊겨 주민들이 추위와 싸워야 했다.

영풍은 경북도를 상대로 조업정지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1심에서 패소해 항소한 상태다. 지난 11일 대구고법에서 이 사건 항소심의 첫 공판이 열리면서 제련소에 대한 조업정지 처분의 적법성을 다시 한 번 다루게 됐다.

강철희 영풍 석포제련소 노조위원장은 “석포면 같은 산골이 아닌 도시에 있는 규모가 더 큰 대기업에 똑같은 일이 생겼다면 과연 60일이나 조업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었을까 싶다. 고작 인구 2000명이 사는 면 지역에 있는 기업이라고 정부와 지자체가 무시하는 것 같다”며 “제련소 직원과 석포면 주민들에게는 그야말로 생존권이 달린 문제인 만큼 법원이 합리적인 판단을 해주길 간절히 바란다”고 말했다.

봉화=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