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대전의 핵심 행정시설 중 하나인 옛 대전부청사(府廳舍)가 대전시의 늑장 행정 때문에 도심 흉물로 전락할 처지에 놓였다. 건물의 역사적 가치가 높아 공공 매입이 적절하다는 연구용역 결과까지 나왔음에도 시가 매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자 현 소유주는 건물 철거를 예고했다.
대전시가 지난 8월 발간한 ‘옛 대전부청사 보존 및 활용계획’ 연구용역에 따르면 부청사 건물은 1937년 준공됐다. 1930년대 모더니즘 양식이 적용됐으며 건축형태와 구조적 특징, 재료에서 근대적인 특징을 보이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용역을 수행한 전문가들은 건물의 공공 매입이 원형을 보존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판단했다.
문화재적 가치가 높은 만큼 시는 지난해 8월 청사 건물을 매입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매입을 이유로 소유주가 제출한 개발계획 심의도 계속해서 보류해 왔다.
그러나 옛 대전부청사를 사들여 어느 부서가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계획은 매입을 시도한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유일하게 활용을 검토했던 문화예술정책과는 지난해 매입 여부를 검토한 끝에 비용 등의 문제로 발을 뺐다. 명확한 활용·보존계획 없이 매입방침만 세우고 공전만 거듭한 셈이다.
시 문화유산과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건물을 활용하려는 부서가 직접 매입을 하는데 부청사를 활용하려는 부서가 없다”며 “건축심의 부서가 우리 부서에 건물 활용계획을 문의하고 있는데, 우리 부서가 해당 건물을 매입하려면 문화재로 등록시키는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반면 건축심의를 담당하는 건축경관과는 문화유산과가 ‘건물을 매입하겠다’면서 계속해서 심의를 보류해달라고 요청해왔다는 입장이다.
시 건축경관과 관계자는 “문화유산과가 ‘부청사의 문화재적 가치가 확인되면 매입할 예정’이라고 해서 그동안 건축심의를 유보해왔던 상황”이라며 “이제는 건물을 활용할 방안이 없다면서 매입 관련 문제를 우리에게 떠밀고 있다. 우리는 단지 심의를 담당하는 부서”라고 말했다.
각 부서가 책임을 떠넘기는 사이 부청사 건물은 폐건물로 전락해 수 년째 방치되고 있다.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옛 대전부청사는 현 소유주인 A사가 2020년 11월 매입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단 한개의 업체도 입주하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장우 대전시장이 최근 언론을 통해 부청사 매입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히자 A사도 결국 ‘옛 대전부청사 건물을 철거할 예정’이라는 취지의 내용증명을 시에 발송했다.
이 업체 관계자는 “시가 매입한다고 해서 모든 개발절차를 중단했는데 갑자기 태도를 바꿔 건물을 매입하지 않겠다고 하고, 이제는 모든 부서가 자기들 담당이 아니라고 한다”며 “이자 및 수수료 등으로 매달 1억원이 넘는 돈이 나가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전=전희진 기자 heej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