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초·중·고교 예산 3조원을 떼어 내 대학에 지원하기로 했다. 수도권 대학과 지방 국립대들은 2배, 지방 사립대는 2.7배가량 국고 지원이 늘어나게 된다. 지난 14년 동안 이어진 등록금 동결과 학생 수 ‘절벽’으로 대학들이 한계 상황에 다다랐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시·도교육감들과 초·중등 교육계가 ‘동생 돈 빼앗아 형·누나 준다’고 반발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교육부와 기획재정부는 15일 ‘고등·평생교육 재정 확충 방향’을 발표했다. ‘고등·평생교육지원 특별회계’(이하 특별회계)를 신설해 11조2000원을 조성하고 이 돈을 대학에 지원하는 내용이 이번 방안의 골자다. 11조2000억원 가운데 8조원은 기존에 정부가 대학에 지원하던 예산이다. 나머지 3조원가량이 핵심인데, 초·중등 교육 예산으로 쓰이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의 일부인 국세 교육세를 특별회계에 넣기로 했다.
정부는 특별회계 신설로 대학들의 ‘숨통’이 틜 걸로 기대하고 있다. 국립대 1곳당 평균 지원액은 기존 88억원에서 176억원으로 2배 늘어난다. 4년제 사립대의 경우 수도권 대학은 49억원에서 100억원으로 2배, 지방 사립대는 49억원에서 130억원으로 2.7배 증액되는 걸로 예측됐다. 전문대의 경우 수도권은 39억원에서 72억원, 지방은 39억원에서 84억원으로 각각 1.8배와 2.2배 늘어난다.
특별회계는 법률 제·개정이 필요해 국회 문턱을 넘어야 한다. 현재 이태규 국민의힘 의원(국회 교육위 여당 간사)이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 제정안’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 일부개정법률안’ ‘국가재정법 일부개정법륭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교육부와 기재부는 “특별회계는 관련 법률 제·개정안이 정기국회 내에 통과돼야 내년도부터 신설될 수 있으므로 국회 교육위원회 등과 긴밀하게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중등 교육을 담당하는 시·도교육감들은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교육감 입장에선 가용 예산이 줄어드는 것이어서 찬성하기 어렵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역시 지난 6·1지방선거에서 서울시교육감 예비후보로 나서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었다. 하지만 부총리 임명 과정에선 찬성으로 입장을 바꿨다.
정부와 날을 세우는 것에 조심스러운 보수 성향의 교육감들도 지역의 초·중등 교육계 반발을 무시할 수 없는 처지다. 교육감들의 협의체인 전국 시·도교육감협의회 차원에서 법안 저지 활동에 나서더라도 정부의 우군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교육감들의 집단 반발은 교육부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일이다. 윤석열정부의 교육 분야 국정과제들을 원활하게 추진하려면 교육감들이 움직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교육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초등 전일제학교’의 경우 교육감들 도움 없이 안착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많다.
특별회계는 교육부와 기재부 합의의 산물이다. 기재부는 학생이 줄어들고 있으니 교육 예산을 줄여야 하고, 특히 내국세의 20.79%를 교육 예산으로 자동 배정하는 교부금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입장이 강했다. 교육부는 학생 수는 줄어들지만 학급 수는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학생 맞춤형 교육을 지향하는 미래 교육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교육 재정은 필수적이라며 맞서왔다. 두 부처는 오랜 논쟁 끝에 교부금 제도를 없애거나 교부율을 낮추는 대신 국세 교육세를 대학용으로 전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결국 초·중등 교육 예산은 깎인 것으로 ‘동생 것 빼앗아 형·누나 주는 것’이란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최근 내국세가 예상보다 많이 걷혀 초·중등 예산이 풍족했지만 언제든지 상황이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게다가 윤석열정부가 국정과제로 추진 중인 유보통합(유치원과 어린이집 통합)이나 고교학점제, 초등 전일제학교 등은 상당한 예산이 필요한 정책들이어서 이런 식으로 초·중등 예산을 줄여서는 곤란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도경 교육전문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