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명단 공개’ 민들레 “이메일 요청시 익명 처리”

입력 2022-11-15 04:48 수정 2022-11-15 09:55
지난 4일 서울광장에 마련된 이태원 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은 시민들이 헌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인터넷 매체 ‘시민언론 민들레’가 14일 유족의 사전 동의 없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실명을 공개해 논란이 된 가운데, 일부 이름을 ‘김OO’과 같은 방식으로 익명 전환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날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추모 미사를 열고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했다.

민들레는 이날 인터넷 홈페이지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8명 중 155명의 실명을 자모음 순으로 공개했다가 일부의 이름을 익명으로 바꿨다. 민들레는 15일 0시20분 기준 11명의 이름을 익명으로 전환하고 “신원이 특정되지 않지만 그래도 부담스럽다는 뜻을 전해온 유족 측 의사에 따라 희생자 몇 분 이름은 성만 남기고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 매체는 앞서 “희생자들을 익명의 그늘 속에 계속 묻히게 함으로써 파장을 축소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오히려 재난의 정치화이자 정치공학”이라며 희생자 명단을 공개했다.


민들레 측이 유족의 사전 동의 없이 임의로 명단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여권은 법적 책임론을 언급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유족 대부분이 공개를 원치 않는 것을 누가 함부로 공개했는지, 여러 법률적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도 “유족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무단공개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이정미 정의당 대표가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치권이나 언론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라며 “정의당은 유가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죽음의 정치를 그만하라”고 했다.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민들레는 명단 공개 24시간 만에 일부 희생자 이름을 ‘김OO’ ‘안OO’ 같이 익명으로 바꿨다. 민들레는 이름을 공개하며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깊이 양해를 구한다” “이름도 공개를 원치 않는 유족께서는 이메일로 연락을 주시면 반영토록 하겠다”고 했었다.

민들레의 이번 결정에 진보 성향 시민단체도 우려를 표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트라우마를 겪는 유가족의 돌이킬 수 없는 권리 침해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민변은 “모든 사람은 헌법과 국제 인권 기준에 따라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를 보장받는다”며 “희생자 명단이 유족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적절한 보호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유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는 반대’라는 입장이었지만, 이날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조금 다른 분위기가 감지되기도 했다. 이재명 대표는 이날 약 90분 동안 국회에서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과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안호영 수석대변인은 이후 취재진에 “유가족 중 명단이 공개되고 사진이 공개되면서 제대로 된 추모가 됐으면 좋겠다는 뜻을 갖고 계신 유가족이 상당수 있었던 것으로 설명된다”고 했다. 신현영 의원도 “오늘 저희가 받은 느낌은 오히려 이 사건이 빠르게 잊힐까 봐 걱정하실 분들이 대다수고, 공개에 대해서 부정적 의견을 표명하는 유가족은 없었다”고 말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영식 대표신부가 14일 오후 7시쯤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인근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미사에서 희생자 155명의 이름을 호명하고 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 유튜브 캡처

한편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날 오후 7시쯤 서울 광화문 파이낸스센터 인근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미사를 열고 희생자 155명의 실명을 공개했다. 미사 도중 김영식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신부는 “무엇 때문에 우리의 아들과 딸, 손자, 손녀, 이웃사촌이 보호받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는지를 밝혀야 한다”며 “정부와 언론은 애도를 말하면서 오히려 시민들을 강제된 침묵 속으로 가둬 두려고만 한다”고 했다.

김 신부는 희생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한 뒤 “용산 이태원 10·29 참사를 위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하자”고 했다. 앞서 더탐사 측은 SNS를 통해 “입수한 명단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에도 모두 넘겨드렸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