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 인터넷 매체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의 실명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하면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시민언론 민들레’라는 매체는 14일 홈페이지에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게재했다. 이날까지 집계된 158명의 희생자 가운데 155명의 실명이 자모음 순으로 공개됐다. 매체 측은 그간 희생자 명단을 비공개 처리해온 정부 방침이 참사 후폭풍을 축소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유족 동의 없이 임의로 공개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공개된 명단에서 딸의 이름을 본 한 어머니는 “(희생자 동생인) 중학생 딸이 (언니의 죽음으로) 친구들에게 혹시나 놀림 받을까 봐 아무에게도 얘길 안 하고 있었는데…”라고 한숨을 쉬었다. 민들레 측은 유가족협의체가 없어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고 부연했다.
명단 자체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등 정부 차원에서 확인된 명단도 아니었다. 기자협회 재난보도준칙에는 피해자 명단 등에 관한 보도는 재난관리당국이나 관련기관의 공식 발표에 따르도록 돼 있다. 유현재 서강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결국 판단 기준은 유족에게 있다. (명단 공개를) 표현의 자유나 보도 가치로 설명하는 주장엔 동의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법적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상 망자는 정보 주체가 아니다. 다만 위법적 요소 자체는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상 프라이버시권은 망자의 명예까지 포섭하는 것으로 폭넓게 이해된다”고 말했다.
명단 공개에 부정적이던 여권에선 법적 책임론이 흘러나왔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유족 대부분이 공개를 원치 않는 것을 누가 함부로 공개했는지, 여러 법률적 문제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동훈 법무부장관도 “유족과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는 무단공개는 법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 역시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치권이나 언론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라며 “정의당은 유가족 동의 없는 명단 공개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동의 없이 이런 명단이 공개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송경모 기자 ss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