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식 후 만취 상태로 무단횡단을 하다 차에 치여 숨진 공무원에게 중과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유족에게 순직급여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재판장 박정대)는 6급 공무원 A씨 유족이 인사혁신처장을 상대로 낸 순직 유족급여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2020년 6월 부산의 한 식당에서 부구청장과 동료 직원들과 함께 저녁 회식을 했다. 3시간여 진행된 회식 자리에서 이들은 소주 12병과 맥주 3병을 마셨고, A씨는 만취한 채 택시를 타고 귀갓길에 올랐다. 집 근처에 도착해 택시에서 내린 그는 도로를 무단횡단하다 시속 85.1㎞로 달리는 승용차에 치였다. 제한속도가 시속 60㎞인 도로였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이튿날 숨졌다. 유족은 그해 10월 인사혁신처에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청구했다.
인사혁신처는 지난해 5월 “이 사건 회식은 공식 행사로 퇴근 중 사고가 맞다”면서도 “무단횡단은 안전수칙을 현저히 위반한 중대한 과실”이라며 A씨 순직급여를 절반으로 깎았다. 공무원연금법은 공무원의 사망 원인에 중과실이 있다면 유족급여를 2분의 1로 감액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족은 2분의 1 감액 처분에 불복해 지난 3월 소송을 냈다. 유족은 “A씨는 중간관리자로 사건 당시 평소보다 만은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고, 제한속도보다 시속 25.1㎞ 초과해 운전한 사고차량 운전자의 과실이 더 크기 때문에 A씨 중과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공무원연금법의 취지나 목적 등에 비춰보면 ‘중대한 과실’은 되도록 엄격하게 해석해야 한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A씨가 직무 관련 회식으로 불가피하게 만취 상태가 됐고, 정상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였기에 그에게 중과실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의 무단횡단을 고의적 수준의 법령 위반 행위로 볼 수 없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A씨의 행위는 20만원 이하 벌금 및 구류, 과료에 처할 사건으로 사고 경위·행위 정도에 비춰 중대한 범법행위로 보기 어렵다”며 “사고차량이 제한속도를 초과해 달린 게 사고의 주된 원인”이라고 밝혔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