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재난안전 대응을 총괄하는 안전총괄실 소속 공무원이 숨진 채 발견된 가운데 이 공무원이 이태원 참사 후 지역 축제 안전 대책 긴급 점검과 각종 자료 제출 요구까지 처리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같은 날 경찰청 특별수사본부가 피의자로 입건한 용산경찰서 정보계장도 숨진 채 발견된 사실까지 거론되며 곳곳에선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다. 많은 누리꾼들은 “수사가 위선이 아닌 아랫선에만 집중되면서 일선 공무원이 희생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에 따르면 서울시 과장급 공무원 A씨(50대)가 11일 오후 4시25분쯤 자택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가족이 숨진 A씨를 발견하고 신고했으며 경찰은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유서는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일각에서는 A씨의 사망 원인이 이태원 참사 이후 과도해진 업무 스트레스 때문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서울시 측은 “참사 당일 재난상황실이나 이태원 현장에서 근무한 사실이 없다”며 “이번 이태원 참사 관련 수사 개시 통보도 없었다”고 해명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숨진 A씨는 지난 8월 19일부터 안전지원과장으로 근무했으며 폭염과 한파, 지진 등 자연재해와 관련된 종합대책, 시민안전보험, 국민안전교육, 재난심리회복 지원, 코로나19 방역물품 관리, 축제(행사) 안전관리계획 심의 업무를 맡고 있었다.
축제 안전관리계획 심의업무는 축제심의위원회를 운영해 주관부서 등에서 제출한 축제 안전관리계획의 적정성을 심의하는 업무다. 숨진 A씨는 생전 이태원 참사 후 지역 축제 안전 대책을 긴급 점검하거나 참사를 둘러싼 심리회복을 지원하는 문건의 최종 결재자였다.
뿐만 아니라 YTN이 공개한 서울시 공문을 살펴보면 시의회나 국회에서 참사 후 핼러윈을 둘러싼 각종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도 받아왔다. 실제 서울시 홈페이지에 올라온 “이태원 참사 충격…유가족 등 시민에 심리지원 서비스”라는 제목의 게시물에 ‘서울시 안전지원과’라고 쓰여있다. 서울시 안전지원과가 배포한 보도자료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것으로 추정된다. 결과적으로 A씨의 사망 원인이 이태원 참사와 무관하지 않은 셈이다.
온라인 곳곳에선 비난이 쏟아졌다. 같은 날 용산서 정보계장도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사실까지 언급하며 아랫선으로 집중된 수사로 또다른 비극이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용산경찰서 전 정보과계장 정모 경감(55)도 A씨가 사망한 11일 12시45분쯤 강북구 자택에서 숨진채로 발견됐다.
정 경감은 지난 2일 용산서 정보관이 작성한 핼러윈 안전 사고를 우려하는 내용의 정보보고서를 사무실 PC에서 삭제하고 이 과정에서 직원들을 회유 종용한 혐의(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증거인멸·과실치사상)로 경찰 특별수사본부에 입건됐다. 정 경감은 지난 6일까지 정상 근무를 하다 특수본에 입건된 7일부터 연차 휴가를 냈었다.
특수본은 정 전 계장에게 소환을 통보하지는 않은 상태였다고 밝혔지만 지난 9일 대기발령 조치를 받은 데 이어 정보과 직원들이 줄줄이 참고인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경찰·공무원 사망에 야당 “죽음 뒤에 뭐 있나”
하루 만에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두 명의 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대해 야당은 일선 공무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해선 안 된다며 숨진 이들 뒤에 무엇이 있는지 낱낱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무진에만 집중된 수사방향을 윗선으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기도 했다.
서용주 민주당 상근부대변인은 이날 오후 브리핑을 통해 “용산경찰서 정보계장과 서울시 안전지원과장이 유명을 달리했다”며 “‘10.29 참사’(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의 죽음 뒤에 무엇이 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고 밝혔다.
서 부대변인은 “국민의힘은 여전히 국정조사와 특검을 거부하고 있지만 특수본 수사는 윗선은 못 본체하며 일선 공무원들만 들쑤시고 있다”며 “이것이 국민의힘이 말하는 진상규명인가. 국민의 힘이 되겠다던 여당이 거꾸로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으니 치졸하다”고 꼬집었다. 그는 “국민의힘 지도부에 다시 한번 촉구한다. 산사람 그만 잡고 10.29참사의 진상조사와 책임자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와 특검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도 “(용산서 전 정보계장)해당 계장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발생 전 인파 사고를 우려하는 정보보고서를 삭제하도록 회유한 것으로 의심받아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 소환을 앞둔 상황이었다고 한다”며 “참사 책임을 오로지 아랫선으로 떠밀고 있는 특수본의 수사 행태가 초래한 희생이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보보고서를 삭제하도록 지시한 윗선이 누구인지, 진상이 밝혀지기를 두려워하는 자가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며 “그것이 이태원 참사와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도록 막는 길이고, 정보계장 죽음에 있을지 모를 억울함을 푸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수사당국이 더 일선 공무원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는 일이 없기를 바라며,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은 진상을 밝히기 위한 국정조사에 협조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의당 김희서 수석대변인도 브리핑에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핵심 책임자들은 보호하고 꼬리만 자르려는 윤석열 정부의 입장이 특수본 수사의 가이드라인이 된 것이 아닌지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주무장관으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행정안전부 장관과 경찰청장이 자리를 보존한 채 수사를 이끌고 있으니 수사가 제대로 될 리 없다”며 “일선 소방관, 경찰관들에게만 책임을 전가하고, 희생양을 찾는 수사라는 국민 불신이 날로 커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정조사 실시 필요성을 강조했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