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풍산개 논란에…동물단체 “동물 이용 정치, 반성해야”

입력 2022-11-11 06:19 수정 2022-11-11 08:09
2018년 10월 12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가진 영국의 공영방송 BBC와 인터뷰에서 로라 비커 진행자에게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선물받은 풍산개 곰이와 송강이를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서 선물 받은 풍산개 ‘곰이’와 ‘송강’을 정부에 반환해 논란이 인 것과 관련해 한 동물단체는 정치에 동물을 이용하는 행태 자체를 비판했다.

실험동물을 구조하는 동물복지단체 비글구조네트워크(비구협)은 10일 공식 인스타그램에 ‘풍산개 파양 사건을 바라보며’라는 제목으로 장문의 글을 올렸다. 단체는 “문 전 대통령 재임 당시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는 민법 98조 개정 추진을 보고 그 생명 감수성에 환호했고, 그 정신을 열렬히 지지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하지만 이번 풍산개 파양 사건을 보며 결국 문재인정부의 동물 지위 향상 의도는 동물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했던 가식적인 행보로 의심할 수밖에 없게 됐다”면서 “살아있는 생명을 ‘기록물’, 즉 물건으로 그 신분을 유지해놓고 이제 와서 기록물이니 도로 가져가라는 이율배반적인 후진 정치를 답습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단체는 “국가 원수들끼리 주고받는 ‘동물 선물’이 모든 사달의 원인”이라고 짚었다. 단체는 “이미 서구 유럽은 국가 원수들끼리 동물을 주고받는 관례는 사라진 지 오래인데 러시아를 비롯한 일부 사회주의 국가에서나 일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퇴임 때마다 생명을 선물이랍시고 주고받은 동물들의 사후 처리를 놓고 매번 사회적 홍역을 앓고 있다”고 지적했다.

곰이와 송강을 정부에 인도한 지난 8일 오전, 풍산개와 산책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 도예가 박진혁씨 트위터 캡처

단체는 또 “이외에도 정치 지도자가 동물을 사적 정치 활동에 이용하는 사례는 많았다”면서 “정치 리더들이 동물을 입양하고 그 동물을 끌어안고 애정 넘치는 눈길로 쓰다듬는 사진과 영상으로 몇 번 홍보하고 퇴임할 때는 ‘국가기록물’이니, ‘지자체 소유’이니 비겁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헌신짝처럼 동물을 버리고 떠나는 사례들을 지겹도록 보아왔다”고 힐난했다.

이어 “어떤 이유에서든 생명에 대한 파양은 책임을 포기하는 것”이라면서 “일국의 대통령까지 지낸 존경 받던 대한민국의 한 리더가 포기하지 않아야 할 덕목은 바로 ‘책임감’이다”라고 강조했다.

단체는 “필요하면 끌어안고 이용가치가 없으면 내뱉는 정치 논리에 살아있는 생명을 대입해 정치적 쟁점으로 삼는 우리나라 정치권은 진짜 반성해야 한다”며 “오늘 우리는 정쟁 때문에 생명에 대한 책임을 미련 없이 버리는 리더를 목격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제발 이제 살아있는 생명을 정쟁에 이용하는 시대는 끝내자. 동물은 물건이 아니다”라고 했다.

한편 ‘파양’이라는 단어를 두고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지난 8일 국회 운영위위원회 대통령실 국정감사에서도 풍산개 논란을 두고 이관섭 대통령비서실 국정기획수석이 ‘파양’이라는 단어를 썼다가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지적을 받고 사과했다. 이 수석은 “사과한다. 그런 표현을 쓴 건 분명히 잘못됐다”면서 “문 전 대통령 측에선 파양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고 정정했다.

10일 오후 대구 경북대학교 수의과대학 부속 동물병원 앞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으로부터 선물 받아 키우던 풍산개 '곰이(왼쪽)'와 '송강'이가 배변활동을 위한 산책을 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문 전 대통령 측은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 개정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며 풍산개 곰이와 송강 반환 의사를 윤석열정부에 전달했다. 퇴임 전 약속했던 ‘사육에 필요한 예산을 지급하겠다’는 협약 내용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후 관련 논란이 정치권에 확산하자 문 전 대통령은 “이제 그만들 하자”며 직접 입장을 밝혔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9일 페이스북에 “(퇴임 당시) 대통령기록관은 반려동물을 관리할 시스템이 없었고 과거처럼 서울대공원에 맡기는 게 적절했느냐는 비판이 있어 대통령기록관으로부터 관리를 위탁받아 양육을 계속하기로 한 것”이라며 “정부가 지난 6월 시행령 개정을 입법예고했으나 개정이 무산됐다. 근거 규정 부재 상태가 장기간 이어져 대통령기록물법 위반 소지는 더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사룟값 논란’을 두고는 “지금까지 소요된 인건비와 치료비 등 모든 비용을 퇴임 대통령이 부담해 온 사실을 아는가. 지난 6개월간 무상으로 양육하고 사랑을 쏟아준 데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이라도 내가 입양할 수 있다면 대환영이다. 내게 입양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라면 현 정부가 책임지고 잘 양육·관리하면 될 일”이라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