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네 발] 방송 속 동물들, 카메라 꺼지면 어떨까?

입력 2022-11-13 00:02 수정 2022-11-13 11:49

한 고양이가 투명한 랩으로 만들어진 벽을 앞에 두고 있다. 이 고양이, 생전 처음 본 투명 벽에 놀랐다. 랩에 머리를 박는 등 투명 벽을 빠져나가려고 안간힘을 쓴다. 벽 너머에선 주인이 “넘어와 봐, 어떻게 넘어올래?”라며 간식을 들고 약을 올린다. 결국 고양이는 랩 아래에 있는 공간을 통해 벽을 넘는 데 성공했다. 최근 SNS에서 유행한 ‘투명 벽 챌린지’ 영상이다. 그런데 이거, 동물 학대 아닌가?

동물을 다루는 콘텐츠는 유튜브에서부터 지상파 방송까지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동물은 미디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소재다. 동물을 키우고 싶지만 여건이 안 돼 키우지 못하는 사람은 콘텐츠를 통해 대리만족한다. 동물을 키우고 있거나 키우고 싶어하는 사람은 정보를 얻게 된다.

다만 콘텐츠의 흥미를 위해 동물 학대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다. 앞서 언급했던 ‘챌린지’가 이 경우다. 최근에는 장애물 피하기 같은 가학적인 챌린지도 등장했다. 인간이 보면 재미있고 귀여운 광경이지만 동물에게는 스트레스다. 한 챌린지가 유행하면 우후죽순 SNS 등지에서 챌린지 영상이 범람한다. 집단적인 동물학대로 비춰질 수 있다.

동물을 소품처럼 여기는 일도 종종 목격된다. 몇 년 전 유명 유튜브 채널이 그랬다. 인기가 많고 조회수가 잘 나오는 동물을 ‘스테디셀러’라고 표현했다. “조회수가 잘 나왔으니 돈값은 했다”는 발언도 뒤따랐다. 평소 동물을 케이지에 가둬 두다가 영상을 촬영할 때만 꺼내줬다는 정황까지 포착됐다. 논란이 되자 결국 해당 유튜브 채널은 폐쇄됐다.

동물학대 논란은 개인방송뿐 아니라 지상파를 포함한 정규 방송에서도 일어난다. 지난 1월 KBS 대하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낙마하는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제작진은 와이어로 말을 고의로 넘어트렸다. 말은 바닥에 크게 고꾸라졌다. 말에 타고 있던 스턴트 배우가 정신을 잃어 촬영은 중단됐다.

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에서 논란이 된 말이 넘어지는 모습. 출처: KBS 1TV

충격을 크게 받은 말은 촬영 일주일 만에 급사했다. 촬영장에는 대기하고 있던 다른 말들이 있었다. 만약 말이 현장에서 사망한다면 다른 말을 이용해 재촬영하려 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논란이 일자 KBS는 2주간 방영을 쉬고, 뒤늦게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전에도 낙마 장면을 찍기 위해 말을 학대한 경우가 여러 차례 있었다. 인기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는 노루를 던지는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살아 있는 노루를 마취시켜 배우에게 직접 던지게 했다.
과거 KBS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배우 유동근씨가 살아 있는 노루를 내던지는 모습. 출처:KBS

다른 나라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미디어에서의 동물학대를 엄격히 규제한다. 동물보호단체가 촬영 현장에서 동물학대가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감시한다. ‘태종 이방원’에서 말을 죽게 한 와이어 기법은 미국의 경우 1939년 이후로 사용하지 않는다. 또 유튜브나 틱톡 등 개인 콘텐츠에서의 동물학대 행위를 규제하기 위한 커뮤니티 가이드라인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도심 속 네 발’은 동물의 네 발, 인간의 발이 아닌 동물의 발이라는 의미입니다. 도심 속에서 포착된 동물의 발자취를 따라가겠습니다.

유승현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