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새 교육과정에 ‘자유민주주의’ 표현을 사용하고, ‘성 소수자’와 ‘성평등’ 표현은 빼거나 수정하기로 했다. 교육과정이 전면 개정되는 것은 2015년 이후 처음이다. 교육과정이 개정되면 초·중·고 교과목과 교과서가 바뀌게 되고 이에 따라 학교 교육 방향도 달라진다.
교육부는 9일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과 ‘특수교육 교육과정’ 개정안(2022 개정 교육과정)을 행정예고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은 2024학년도에 초등 1∼2학년, 2025학년도에 초등 3∼4학년과 중1·고1, 2026학년도에 초등 5∼6학년과 중2·고2, 2027학년도에는 모든 학년에 적용된다.
앞서 정책연구진은 공청회와 국민참여소통채널을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한 뒤 교육부에 교육과정 시안을 제출했다. 교육부는 이를 바탕으로 쟁점 사안을 심의해 행정예고 시안을 마련했다.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 쓴다
교육부는 역사 교육과정에서 맥락에 따라 기존 시안에 있던 ‘민주주의’와 새로 추가한 ‘자유민주주의’를 함께 쓰는 절충안을 택했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한국사 성취기준과 성취기준 해설에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이라는 표현은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대한민국 정부 수립 과정’으로 바꿨다.
‘민주주의’ 앞에 ‘자유’를 넣을 것이냐는 역사 학계의 대표적인 이념 논쟁거리 중 하나로, 보수진영의 지적을 반영해 수정한 것으로 풀이된다. 보수진영은 현행 헌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언급하고 있으며 ‘민주주의’만 쓸 경우 ‘사회민주주의’ ‘인민민주주의’로 해석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해왔다. 반면 진보 진영에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독재정권 시절 사실상 ‘반북·멸공’과 동일시됐다는 점을 강조하며 교과서에 사용을 반대해왔다.
교육부는 ‘민주주의 발전’처럼 ‘민주주의’ 표현이 맥락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기존 표현을 유지하기로 했다. 장상윤 차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용어에 대해서는 (정책연구진과 교육부 사이에) 이견이 남아 있었다”며 “다만, 2개의 용어를 대립적인 가치나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사회 교육과정에서는 시장경제의 기본원리인 ‘자유경쟁’ 등이 누락됐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초등학교 사회에서는 ‘기업의 자유와 사회적 책임’이라는 표현을 쓰고, 중학교 사회에서도 ‘자유경쟁을 기반으로 하는 시장경제’라는 표현을 쓰기로 했다.
‘성 평등’→‘성에 대한 편견’
쟁점이었던 성 관련 용어의 경우 개념을 풀어 쓰는 방식으로 수정하면서 기존 시안에 포함됐던 ‘성 소수자’와 ‘성평등’ 표현을 삭제했다.
사회 교육과정 가운데 고등학교 통합사회의 경우 시안에는 ‘사회적 소수자’의 사례로 ‘장애인, 이주 외국인, 성 소수자 등’을 들었는데 이를 ‘성별·연령·인종·국적·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받는 사회 구성원’으로 바꿨다.
장홍재 교육부 학교교육지원관은 “성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인 청소년기에 교육과정 안에 성소수자가 사회적 소수자의 구체적 예시로 들어갔을 때 발생할 여러가지 청소년들의 정체성 혼란을 깊게 우려했다”고 설명했다.
도덕 교육과정의 ‘성평등’은 ‘성에 대한 편견’과 ‘성차별의 윤리적 문제’ 등으로 수정했다.
보건 교육과정에서는 기존에 사용한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를 ‘성·생식 건강과 권리’로 바꾸고, 이것이 ‘성·임신·출산과 관련한 건강관리와 육아휴가 등 권리’에 관한 학습 내용이라는 점을 명시했다.
안전교육 강화로 참사 막는다
교육부는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학교가 학생들의 발달 수준에 맞게 관련 교과, 창의적 체험활동과 연계해 안전교육을 강화하도록 했다.
교과에서는 초등통합·체육·음악·미술 교과에 다중밀집환경 안전 수칙을 넣고, 보건과목에 위기 대처 능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도 넣었다.
창의적 체험활동에서는 ‘교내외 활동에 따른 안전교육’ 항목을 신설하고 밀집도를 고려한 안전확보 지침을 마련하도록 했다.
행정예고 시안은 교육부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의견이 있는 기관·단체·개인은 우편과 팩스, 전자우편(이메일)으로 이번 달 29일까지 의견을 제출하면 된다. 교육부는 교육과정 심의회와 국가교육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올해 12월까지 새 교육과정을 확정·고시한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