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 이후 1년 2개월 만에 처음 기소한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공수처는 과거 검찰의 무혐의 결론을 뒤집고 해당 사건을 기소했지만 ‘1호 기소’ 사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되면서 체면을 구겼다. ‘무리한 기소가 아니었느냐’는 지적과 함께 수사 역량 부족 논란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김 전 부장검사 측 변호인은 판결 선고 후 “정치적 계산과 공수처 조직 논리에 따라 수사, 기소가 이뤄졌다”고 비판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단독 김상일 부장판사는 9일 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김 전 부장검사와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된 박모 변호사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의 금품·향응 수수와 검사로서의 직무 사이에 대가 관계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가 무죄 판결을 선고하자 피고인석에 있던 김 전 부장검사는 소리 내 울었다.
김 전 부장검사 측 변호인은 선고 후 “증거와 법리에 따라 실체적 진실을 밝혀준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김 전 부장검사는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합수단) 단장 시절이던 2015∼2016년 박 변호사의 자본시장법 위반 사건 처리 관련해 편의를 봐주고 1093만5000원 상당의 뇌물과 접대를 받은 혐의(뇌물수수)로 지난 3월 기소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뇌물액으로 표기된 1093만5000원 중 1000만원은 김 전 부장검사가 빌렸던 돈으로 봤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는 2016년 7월 27일 박 변호사에게 1000만원을 빌린 후 같은 해 8월 2일 이를 모두 갚은 것으로 보인다”며 “차용증을 작성하지 않고 변제 기일을 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는 차용금이 아니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나머지 93만5000원은 박 변호사가 김 전 부장검사와 술자리 후 계산한 돈이라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를 대가로 김 전 부장검사가 박 변호사에게 수사상 편의를 제공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김 전 부장검사가 향응을 수수할 당시에는 예금보험공사에 파견 중이서 박 변호사 사건 처리에 관한 직접적 권한이 없었다”며 “김 전 부장검사가 합수단 소속 다른 검사들에게 이 사건과 관련해 연락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피고인들이 개인적 친분에 따라 술을 자주 마셨고 김 전 부장검사도 박 변호사에게 술을 사기도 했던 점을 고려할 때 일방적인 향응 제공이 아니었다는 판단이다.
공수처는 “재판부 판단 내용 중 법리적으로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이 있어 항소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 사건은 지난 2021년 1월 21일 출범한 공수처가 1년 2개월 만에 처음으로 기소권을 행사한 사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김 전 부장검사가 지난 2016년 10월 이른바 ‘스폰서 검사 사건’으로 수사 받을 때 이번 사건이 처음 드러났지만 당시 검찰에선 무혐의 처분했다.
앞서 김 전 부장검사는 ‘스폰서’ 김모씨에게 금품을 받은 혐의로만 기소돼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 받았다.
김씨는 지난 2019년 10월 경찰에 박 변호사와 관련한 고발장을 새로 제출했다. 경찰은 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고 검찰은 공수처법에 따라 사건을 공수처로 넘겼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