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가 최성범 용산소방서장을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 혐의로 입건한 건 “소방대응 2단계 발령이 늦었다”는 이유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장 구조 책임자로서 소방 자원을 구조 작업에 제때 투입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최 서장은 “정말 황당하다”는 입장을 밝혔고, 소방 당국 내부에서는 반발이 커지는 모양새다.
특수본은 8일 최 서장의 집무실을 포함해 경찰청장, 서울청장, 용산경찰서장 집무실 등 55곳을 압수수색했다. 특수본은 압수수색에서 최 서장의 휴대전화와 수첩 등을 확보했다. 앞서 특수본은 지난 7일 이임재 전 용산경찰서장과 박희영 용산구청장, 용산경찰서 정보과장·정보계장, 류미진 전 서울경찰청 인사교육과장, 최 서장 등 6명을 피의자로 전환했다고 밝혔다.
국민일보 취재에 따르면 특수본은 최 서장이 참사 이후 신고가 빗발쳤을 때 ‘대응 2단계’를 발령하지 않은 경위와 과실 여부를 조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서울소방재난본부에서 제출받은 참사 당일의 소방 내부 무전 녹취록에는 참사 당시 대응 2단계를 발령한 주체가 발령권자인 최 서장이 아닌 서울소방재난본부로 나와 있었다. 최 서장은 오후 11시5분 무전기를 잡고 “용산하나가 지휘한다”며 직접 현장 통제에 나섰지만 대응 2단계를 발령하진 않았다. 현행 법령상 소방 대응 1단계 발령권자는 현장 지휘대장, 2단계 발령권자는 관할 소방서장이다.
이날 최 서장의 압수수색 영장에는 압수 이유로 “소방대응 2단계 발령이 늦게 이뤄졌다”는 내용이 적힌 것으로 전해졌다. 최 서장은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초기 대응이 부실했다는 취지로 적힌 영장을 읽고 정말 황당했다”고 말했다.
소방 당국은 지난달 29일 첫 압사 신고(오후 10시15분) 후 1시간이 지난 오후 11시13분쯤 인근 5~6개 소방서에서 인력과 장비를 동원하는 ‘대응 2단계’를 발동했다. 최 서장은 앞서 오후 10시43분 관할소방서 모든 인력이 출동하는 1단계를 발령했는데, 2단계 조치까지 ‘30분’의 공백을 부적절한 초동 대응으로 판단한 것이다. 가용 소방력을 총동원하는 3단계는 오후 11시50분쯤 내려졌다.
참사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순천향대서울병원에 응급 환자 대신 사망자를 대거 이송하도록 여러 차례 지시한 내용도 혐의 적용의 한 이유라는 분석이 나온다. 특수본은 소방 당국이 참사 당일 인파 통제와 관련해 경찰로부터 2차례 공동대응 요청을 받고 출동에 응하지 않은 정황도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관 등 구조 업무 담당 공무원이 업무상과실치사상죄로 처벌된 전례는 드문 편이다. 2017년 12월 29명이 숨진 충북 제천시 스포츠센터 화재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당시 화재 진압을 지휘한 소방서장 등을 기소의견으로 넘겼지만 검찰은 불기소했다. 유족 측이 재정신청을 냈지만 법원도 “최선의 조치였다고 할 수는 없으나, 업무상 과실이 있다고 보기에 부족하다”며 기각했다.
일선 소방관들은 들끓는 분위기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소방본부 서울소방지부(서울소방노조)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이번 참사의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제대로 되도록 지켜볼 것이며, 지휘 책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꼬리자르기식 희생양을 만든다면 강력히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도 “납득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최 서장은 현장 언론브리핑에서 마이크를 잡은 손을 덜덜 떨면서도 침착하게 말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서울소방재난본부 홈페이지에는 최 서장과 소방관들을 응원하는 시민들의 글이 이어지고 있다. 여러 누리꾼은 “최성범 용산소방서장님 응원합니다” “힘내세요” “국민은 알고 있다. 소방관들은 아무 잘못 없다” “현장에서 고군분투한 분들에게 고생했다고 위로는 못할 망정 책임을 떠넘긴다”는 등의 글을 올리며 최 서장을 격려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