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 안 받으면 스토킹 무죄… “입법목적 간과 판결”

입력 2022-11-08 17:24
국민일보DB

집요하게 전화를 했더라도 상대방이 받지 않았다면 스토킹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원 판결에 여성변호사협회가 유감을 표했다.

여변은 8일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은 스토킹을 정의한 법 규정을 지나치게 법 기술적으로만 해석해 스토킹 피해의 맥락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인천지법 형사9단독(판사 정희영)은 헤어진 연인에게 반복해서 전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 스토킹한 혐의(스토킹처벌법 위반)로 기소된 A씨(54·남)에게 무죄를 선고해 논란에 휩싸였다.

재판부는 “A씨가 전화를 걸었지만 전 애인 B씨가 통화를 하지 않았다”면서 “상대방 전화기에 울리는 벨 소리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으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B씨 휴대전화에 부재중 전화가 표시됐더라도 이는 휴대전화 자체 기능에서 나오는 표시에 불과하다”면서 “A씨가 B씨에게 도달하게 한 부호에 해당한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원이 전화를 계속 걸었는데도 상대가 받지 않아 벨 소리만 울렸고 ‘부재중 전화’가 표시됐다면 스토킹처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는 상대방 전화기에 울리는 벨 소리는 정보통신망법상 정보통신을 이용해 상대방에게 송신된 음향으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스토킹처벌법이 정의하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물건이나 글·말·음향·그림·화상을 도달하게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는 2005년 대법원 판례를 인용한 결과다.

이에 여변은 “정보통신서비스 이용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정보통신망법과 스토킹범 처벌과 피해자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스토킹처벌법의 입법 목적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스토킹처벌법의 입법 목적, 문제 되는 정의 규정에 관한 면밀한 검토와 피해자 관점의 판단을 통해 사건을 바라보기를 기대한다”고 촉구했다.

여변은 아울러 “현행법이 스토킹 행위 유형을 다섯 가지로 협소하게 정의하고 있으며, 이런 제한적인 열거 방식의 규정이 현실에서 다양하게 일어나는 스토킹 행위를 제대로 포함할 수 없다”며 국회가 법 개정에 나설 것을 요구했다.

현재 스토킹 범죄는 피해자가 원하지 않으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다. 법무부와 정치권은 지난 9월 ‘서울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이 발생한 이후 스토킹법의 반의사불벌죄 조항을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