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세대로서 너무나 미안할 따름입니다.”
지난 5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그알) <핼러윈의 비극, 외면당한 SOS> 편에서 진행자 김상중씨가 한 마무리 멘트였다. 이를 두고 온라인상에서는 “희생자와 유족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정책 담당자도 아닌 기성세대가 왜 미안해 해야 하느냐”는 반론이 나왔다. 이에 대해 “기성세대가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지 못했다는 의미 아닌가”라는 재반론도 이어졌다.
그알은 이날 방송에서 이태원 참사의 원인은 관계 당국이 대규모 인파가 몰린다는 점을 알면서도 미리 사고 가능성을 예방하고 대비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있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방송 끝에서 “분향소를 찾은 일반 시민들이 가장 많이 남긴 말은 ‘미안하다’였다”며 “희생자 대다수를 차지한 건 20, 30대 젊은이였다. 이들은 만원 버스와 지옥철을 타면서 학업과 취업 준비로 스트레스를 받았고 직장에서는 사회 초년생으로 적응하면서 숨 막히도록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왜 이토록 참혹하게 생을 마무리해야 했는지 기성세대로서 너무나 미안할 따름”이라며 “명확한 진실규명을 위해 내 책임이 아니라고 했던 사람들이 책임질 위치에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내 가족이 사망한 것처럼 진심으로 슬퍼하고 자신의 책임이라고 느낀 이들이 참혹한 비극을 수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인용해 “국가는 국민의 하인이지 국민의 주인이 아니다”며 방송을 마무리했다.
이를 본 기성세대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한 누리꾼은 지난 6일 온라인 커뮤니티 네이트 판에 ‘이태원 사건 기성세대가 뭘 미안해 해야 하나요?’라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그는 “사고 난 것 안타깝고 죽은 분들과 유가족들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픈데, 평범한 서민인 기성세대가 뭘 미안해 해야 하느냐”며 “그날 질서유지를 위해 자원봉사라도 갔어야 했다는 건가”라고 물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정책 담당자도 아니고 당일 통제든 뭐든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이 우리한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치인도 아니다”며 “그알 마무리 멘트로 김상중님이 ‘기성세대인 우리가 미안하다’고 하는데 갑자기 의문이 올라온다”고 했다.
가장 많은 추천을 얻은 댓글은 “추모한다. 내 자식 또래 아이들이라 안쓰럽고 마음이 아프다. 뉴스를 보면 슬프다”면서도 “그런데 미안하진 않다. 뭐가 미안해야 하느냐”라는 내용이었다. 이 댓글을 적은 누리꾼은 “모두가 즐기는 명절도 아니고 일부 젊은이의 놀이문화 정도인데, 그 시간에 일하다 뉴스를 본 기성세대인 나는 뭘 미안해 해야 하나”라고 했다.
누리꾼 다수가 관심을 보인 다른 댓글들에도 “일반인이 미안할 건 없는 것 같다. 추모 정도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견해나 악의 없이 궁금하다. 부모님 세대가 왜 미안해 해야 하나”라는 내용이 포함됐다.
반면 이 같은 분위기에 “놀랍다”며 반론을 제기하는 내용도 있었다. 한 누리꾼은 “세월호 참사 이후로도 안전망을 구축하지 않았다는 것 등에 대한 공감을 표현한 것 아닌가”라며 “저도 국가가 애도를 강요하는 건 반대다. 하지만 기성세대로서 그 세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그리고 놀다가 죽은 게 아니고 살아가다가 죽은 것”이라며 기성세대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종교계는 이태원 참사를 추모하면서 잇따라 기성세대의 책임론을 언급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추모집회에 참석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처음 사과 메시지를 밝혔다. 이날 총무원장 진우스님은 추도사에서 “우리 기성세대는 사회적 참사가 있을 때마다 재발 방지를 되뇌어 왔지만 그 약속을 또 지키지 못했다”고 했다.
정순택 대주교도 지난 6일 명동대성당에서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미사’ 강론에서 “이 사회 기성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부끄럽고 큰 책임을 느낀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