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당일 대규모 인원이 몰릴 것이란 용산경찰서의 내부 보고가 사전에 있었지만 윗선에서 “대통령실 주변 집회에 집중하라”는 취지로 보고를 묵살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위험의 조짐을 미리 보고했던 경찰은 자신이라도 직접 현장에 나가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7일 SBS 보도에 따르면 사고를 사흘 앞둔 지난달 26일 서울 용산경찰서 정보과 소속 경찰관 A씨는 ‘이태원 핼러윈 축제 공공안녕 위험 분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었다. 경찰청 특별수사본부(특수본)는 최근 참고인 신분으로 A씨를 불러 이 문서를 보고하는 과정에서 윗선의 대응 등을 확인했다.
이 보고서에는 지난해 축제에 약 10만명이 이태원을 방문했는데, 올해는 방역수칙 해제 후 첫 핼러윈 행사라 많은 인파가 몰려들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 적혔다.
SBS에 따르면 A씨는 이날 오전에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상급자인 정보과장에게 “인파 상황을 살피고 경찰서에 보고할 정보 경찰관을 현장 배치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정보과장은 “당일 저녁 대통령실 인근까지 행진하는 대규모 집회 상황에 집중하라”며 A씨 보고를 묵살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자신이라도 직접 이태원 현장에 나가보겠다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씨는 직속 상관인 정보계장에게 다시 의견을 전달했으나 역시 조치는 없었다.
A씨는 저녁 8시반쯤 작성한 보고서를 서울경찰청 첩보관리시스템에 올렸는데, 이 보고는 시스템 설정에 따라 72시간 뒤 자동 삭제됐다. 자동 삭제 시점은 참사 당일인 29일 저녁 8시30분쯤이었다.
특수본은 A씨 보고 내용이 용산서장은 물론 치안 대책을 세운 112상황실이나 기동대 배치를 하는 경비과에 전파되지 않은 사실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이태원 참사가 벌어지자 윗선은 A씨에 대해 증거인멸을 지시하고 회유를 시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A씨가 보고서를 없애라는 지시를 거부하자 다른 직원을 시켜 삭제하도록 한 정황도 드러났다.
A씨가 만든 보고서는 서울경찰청 첩보관리시스템에서는 자동삭제됐지만, 그의 사무실 PC에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때문에 참사 발생 나흘 뒤인 지난 2일 정보 경찰관을 현장 배치하자는 A씨 의견을 묵살했던 상급자들은 PC에 저장된 보고서를 지우라고 A씨에게 지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A씨는 “근무 중이라 들어갈 수 없고 해당 보고서도 지울 수 없다”고 반발했다.
SBS에 따르면 결국 상급자 지시를 받은 다른 직원이 비밀번호 설정이 돼 있지 않던 A씨의 PC에 저장된 보고서를 포함해 바탕화면에 있던 모든 자료를 삭제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수본은 상급자들이 A씨에게 인파 위험을 경고한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을 외부에 알리지 말라고 회유하거나 참사 당일 정보경찰관들이 현장에 배치됐었다는 취지로 말을 맞추자고 지시한 정황을 파악, 이들을 직권남용과 증거인멸 등 혐의로 입건해 조만간 소환 조사할 방침이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