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무에 시달리다 부임 5개월 만에 현지에서 숨진 문덕호 전 핀란드 대사가 법원에서 순직을 인정받았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유환우)는 7일 문 전 대사 유족이 순직 유족 급여를 지급하지 않기로 한 처분을 취소해달라며 인사혁신처장을 대상으로 낸 소송에서 유족 측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문 전 대사는 2018년 11월 핀란드 대사로 부임했다. 다음 해인 4월 22일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며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튿날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숨졌다.
유족은 그해 9월 고인의 사망이 공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인사혁신처에 순직 유족급여 지급을 청구했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고인의 근무환경에서 백혈병을 유발할만한 요인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유족의 청구를 기각했다. 유족은 법원에 인사혁신처 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법원은 “고인은 누적된 과로와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였고, 이에 따라 급성 백혈병이 발병했거나 급격히 악화한 것으로 보인다”며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에 따르면 고인은 대사 부임 3개월만인 2019년 2월 문재인 당시 대통령의 핀란드 국빈 방문 행사 준비를 시작했다. 한국 대통령이 핀란드 국빈 방문에 나선 것은 13년 만이었다.
당시 주 핀란드 대사관에서 실무를 처리하던 참사관급 직원들은 국빈 행사 준비 경험이 부족해 고인인 문 전 대사가 준비 협의와 행정 보고 등 실무를 직접 처리해야 했다.
국회의장의 핀란드 방문 대응, 2019년 4월 14일 핀란드 총선 결과 보고, 3·1운동과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행사 준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출장단 초청 등 다른 주요 업무들까지 소화해야 했다. 고인은 부임한 이래 매달 11시간~30시간의 초과근무를 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고인은 업무 과중으로 몸의 이상증세를 조기에 관리하거나 충분히 휴식하며 면역력을 회복할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며 “비록 급성 백혈병 발병 원인이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해도 업무상 과로와 스트레스가 질병과 중첩적으로 작용해 고인을 사망에 이르게 했다”고 판단했다.
이가현 기자 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