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전기요금 인상 수준·시기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내년 초까지 5%대 고물가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에서 최근 ‘적자 공룡’ 한국전력이 회사채 시장에 미치는 불안감도 만만찮기 때문이다.
6일 기획재정부·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한전은 다음 달 말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 내년도 기준연료비 인상 계획을 내놓을 계획이다. 현행 전기요금은 기준연료비·실적연료비·기후환경요금 등으로 구성되며, 기준연료비는 최근 1년간 액화천연가스(LNG)·석탄·석유 가격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말 기준연료비(4월·10월 두 차례)를 ㎾h당 9.8원, 기후환경요금(4월)은 ㎾h당 2원 인상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다음 달에는 내년 1분기 실적연료비 인상 폭도 결정된다.
기재부로서는 내년도 전기요금 인상 수준·시기가 큰 고민거리다. 최근 물가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5%대 고물가가 내년 1분기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기·가스 등 공공요금 인상은 물가를 끌어올리는 주요인이다. 지난달 전기·가스·수도는 전년 동월 대비 23.1% 오르며 통계 작성이 시작된 2010년 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물가 상승 기여도도 높아지는 추세다.
고환율과 국제유가 변동 등 대내외 불확실성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전기요금 대폭 인상 계획을 밝히는 것은 큰 모험이다. 기재부는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 인상 계획을 바탕으로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담아야 한다. 올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대로 마감할 가능성이 큰데, 내년도까지 고물가 상황이 이어진다면 기재부로서는 큰 부담이다.
다만 최근 들어 ‘한전 발(發)’ 자금시장 경색이 심각해지고 있는 점은 큰 변수다. 이 때문에 정부가 무작정 전기요금 인상을 억누르기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도 힘을 얻는다. 지금 한전은 대규모 적자 때문에 채권 발행 없이는 버틸 수 없는 상황인데, AAA등급 한전채가 시장에 쏟아지면서 AA급 이하 일반 회사채는 투자자에게 외면받고 있다.
이에 정부는 한전 측에 채권 발행을 최대한 자제하고, 한전채를 해외에서 발행하도록 유도하는 방안·은행 대출을 늘리는 방안 등을 추진 중이지만, 이 역시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일단 채권 해외 발행의 경우 최근 들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한국 채권에 대한 투자심리가 얼어붙고 있다. 은행 대출도 쉽지 않다. 한전이 올해 최대 40조원 적자를 기록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선뜻 대출에 나서기는 만무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적절한 시기 ‘전기요금 인상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결국 한전 적자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은 전기요금 정상화이기 때문이다. 통상 전기 요금이 ㎾h당 10원 오를 때마다 한전의 연 매출이 5조 원 증가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정부 관계자는 “아직 내년도 전기요금 인상과 관련해 협의가 진행된 것은 없다”며 “다양한 측면에서 관계부처가 협의해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신재희 기자 jsh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