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 상승 무서워”…금융사 신종자본증권 줄줄이 발행 연기

입력 2022-11-03 06:00

금융사들의 ‘전가의 보도’처럼 쓰였던 신종자본증권 발행이 차질을 빚고 있다. 흥국생명은 국내 금융기관으로서는 13년 만에 처음으로 신종자본증권의 조기상환을 미실시했다. 한화생명도 1조원가량의 신종자본증권 발행 계획을 연기했다. 급격한 금리 상승에 더해 채권시장 리스크가 부각된 여파로 해석된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흥국생명은 오는 9일 예정돼 있던 5억 달러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에 대해서 중도상환(콜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했다. 흥국생명은 상환 자금 마련을 위해 새로운 신종자본증권 발행 계획을 세웠지만 시장이 얼어붙은 영향으로 이를 연기했다. 국내 금융기관의 신종자본증권 콜옵션 미실시는 2009년 우리은행 후순위채 이후 13년 만에 처음이다.

앞서 한화생명도 지난 9월 결정한 7억5000만 달러(약 1조600억원) 규모의 외화 신종자본증권 발행 일정을 잠정 연기했다. 당초 지난달 초 아시아, 유럽, 미국 시장에서 수요예측을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금리 급등에 대한 부담이 발목을 잡았다. 한화생명은 금리 추이 등을 지켜보고 재추진을 결정할 방침이다.

신종자본증권은 주식과 채권 성격을 동시에 지닌 하이브리드채권이다. 후순위 채권인 탓에 금리가 높게 산정되지만 재무지표 산정 때 자본으로 인정돼 금융기관의 자본 적정성을 높여주는 역할을 했다. 금융사들은 코로나19 팬데믹과 저금리 기조가 맞물렸던 지난 2년간 자본 여력 확보와 발행금리가 높은 기존 채권의 조기상환 목적으로 적극적으로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그러나 각국 중앙은행의 강력한 금리 인상이 이어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자본을 늘릴 수 있다는 장점을 고금리 부담이 상쇄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레고랜드 사태’가 채권 금리 폭증을 자극했다.

특히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실시는 신용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신종자본증권은 중도상환 조건이 부여되어 있으나 어떠한 약정도 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 채무불이행(디폴트)은 아니다. 발행사의 자율 선택에 의해 조기상환이 결정된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기존에 정해진 콜옵션 날짜를 실질적 만기로 인식한다. 다시 말해 조기상환 미실시는 투자자들에게 당연하게 여겨지던 원금 상환 시기를 미룬 것으로, 해당 금융기관에 대한 신뢰를 낮추는 요인이 된다. 최성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레고랜드 이슈와 기업들의 기초여건 저하 가능성 고조로 국내 기업이 발행한 외화채권 신용 스프레드는 확대 기조였다”며 “이번 일로 투자 심리는 당분간 위축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흥국생명의 콜옵션 미행사에 큰 문제가 없다며 시장을 달랬다. 금융위원회는 보도자료를 통해 “금융위, 기획재정부, 금융감독원 등은 흥국생명의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 행사와 관련한 일정·계획 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으며 지속해서 소통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흥국생명의 수익성 등 경영 실적은 양호하며 계약자에 대한 보험금 지급 등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흥국생명 자체의 채무불이행은 문제 되지는 않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