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년 전 ‘압사 사고’ 겪은 홍콩, 이렇게 변했다

입력 2022-11-02 08:08 수정 2022-11-02 11:11
홍콩 경찰들이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열린 홍콩 란콰이퐁 핼러윈 축제에서 시민들과 함께 나란히 걸으며 일방통행을 안내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다음 날 홍콩의 최대 번화가인 란콰이퐁에서는 ‘주최자 없는’ 핼러윈 축제가 열렸다. 29년 전 21명이 숨진 압사 사고가 벌어졌던 곳이었다. 현지 교민에 따르면 란콰이퐁에서는 상인회와 경찰이 유기적인 협조를 통해 안전관리를 최우선으로 한 행사를 진행하는 문화가 정착된 것으로 전해졌다.

홍콩에서 5년간 거주하고 있는 교민 A씨는 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현지 경찰의 핼러윈 인파 대응 방식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A씨는 “란콰이퐁에서 열리는 핼러윈 페스티벌에 3번 이상 가봤는데, 홍콩의 이태원 같은 느낌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고 했다. 란콰이퐁은 지형 자체가 산으로 올라가는 구조라 이태원처럼 경사진 골목과 경사진 길, 계단이 많은 특징이 있다고 한다. A씨는 “바나 술집, 식당 이런 게 굉장히 많다. 특히 핼러윈 같은 때는 페스티벌을 위해 사람들이 다 몰려 바쁜 곳”이라고 말했다.

앞서 란콰이퐁은 1993년 새해 전야를 맞아 수많은 시민들이 몰리면서 21명이 숨지고 62명이 다치는 압사 사고를 겪었다. 이후 현지 경찰은 통제 매뉴얼에 따라 안전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이씨는 “(란콰이퐁) 핼러윈 축제의 경우 경찰이 주도하는 느낌이 있다”며 “뉴스를 읽어 보니까 란콰이퐁 상인회와 경찰이 연계해서 미리 계획한다고 들었다”고 했다.

이어 “경찰, 정부 웹사이트에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차량 접근과 집합이 금지된다는 등의 내용을 도로별로 미리 안내하는 것을 봤다”고 했다.

A씨는 현지 경찰이 수많은 인파가 몰린 가운데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소개했다. 특징은 경찰의 ‘적극’ 통제다. 일방통행하도록 안내하고, 갈 수 있는 장소를 지정하며, 언제든 구급차가 다닐 수 있도록 여유 공간을 마련하는 게 골자다.

A씨는 “가장 놀랐던 부분은 경찰이 도로에 엄청나게 나와서 안내하고 일방통행을 한다”며 “(사람이 도보로)갈 수 있는 곳과 갈 수 없는 곳이 있고, 차량도 진입할 수 있는 골목과 아닌 곳이 있다”고 했다. 또 “사람들이 꽉꽉 메워서 일방통행을 하는 중에도 도로 한쪽에는 빈 공간이 있어서 구급차(의 통행이 가능하고), 다른 응급조치가 이뤄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도 봤다”고 했다.

실제 란콰이퐁에서 열린 행사 사진에 따르면 경찰은 대여섯 겹씩 무리를 이뤄 인파 사이에 공간을 마련한 채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이는 행렬의 속도를 조절하고, 갑작스레 인파가 불어나는 등 긴급상황에 신속히 대응하는 기능을 한다.

A씨는 “이렇게 하지 않는 경우에도 경찰이 (행사 행렬) 옆에서 골목마다 다 서 있다”며 “이쪽으로 가라고 안내를 해주고 만약 멈춰야 될 경우에는 멈추라고 얘기도 해준다”고 전했다.

CBS 김현정의 뉴스쇼 유튜브 캡처

비상시를 대비한 구급차가 다닐 수 있는 여유 공간도 미리 확보해놓는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제가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는 이미 빈 공간이 따로 정해져서 거기에 앰뷸런스나 다른 그런 기구나 시설들이 미리 들어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고 했다.

A씨는 특히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놀라웠던 건 입구랑 출구 앞을 통제한다는 것이다. 아무 곳이나 들어갈 수 없고 아무 때나 들어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고 했다. 그는 “경찰이 일종의 클럽 경비원처럼 15분에서 20분마다 입구를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숫자를 제한해서 들여보내고 또 나가는 숫자를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지나친 통제로 축제의 재미가 반감된다는 지적이 나올 수도 있다. 이에 A씨는 “저도 익숙하지 않아 처음 봤을 때 불편한 거 아닌가, 축제의 재미를 떨어뜨리는 거 아닌가 생각도 했었다”며 “사람들이 통제의 지시를 순조롭게 잘 따르고 안전사고가 없는 것을 보면서 중요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전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홍콩 시민들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 소식에도 현지 경찰의 통제를 믿으며 축제를 즐긴 것으로 전해졌다.

란콰이퐁 상인협회장은 “경찰이 1993년 비극에서 교훈을 얻었기 때문에 란콰이퐁은 안전하다”며 “경찰은 자신들이 정한 최대 운집 인원 선을 넘어가면 더 이상 사람들이 란콰이퐁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인파 통제 공식”이라고 말했다.

홍콩 경찰은 “서울 참사 이후 취한 특별 조치가 아니라 예년과 유사한 평소 행사 통제 매뉴얼”이라며 “우리는 수년간 란콰이퐁에서 벌어지는 축제에 대응해 온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