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이태원 참사 전후 경찰의 미흡한 대응에 대해 ‘강도 높은 감찰’을 예고한 가운데 일선 경찰관 사이에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참사가 발생했던 곳에 있던 이태원파출소 직원으로 추정되는 경찰관은 “경찰청장부터 감찰을 받으라”며 핼러윈 행사 당시 대규모 인파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인력 충원을 제대로 해주지 않은 윗선 책임을 물었다.
다른 한 일선 경찰관은 “책임 소재는 발바닥 불나도록 뛴 현장 경찰관이 아니라 높은 탁자 위의 수뇌부에 있다”고 했다. “현장 대응에 초점을 맞춰 정책적인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식 책임 회피”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누리꾼들은 “소총 주고 탱크 막으라는 꼴”이라는 반응을 보이며 현장 경찰관에게 책임을 묻는 식의 흐름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일선 책임’ 분위기에 “인력 충원 제대로 했나” 반발
1일 오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이태원 파출소 직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A씨는 글에서 10만명 넘는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경찰 수뇌부의 적절한 인력 충원이 없었던 게 문제의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선 경찰관에게 사고 책임을 지울 게 아니라 윗선 먼저 감찰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자신을 현직 이태원파출소 경찰관이라고 밝힌 A씨는 “먼저 이태원 사고 관련해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글을 시작했다.
A씨는 “오늘 뉴스를 보며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청장의 현장대응 미흡에 대한 감찰 지시와 각종 언론 보도를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 글을 쓴다”고 했다.
그는 “10만이 넘는 인파가 몰릴 것이라는 예상은 누구나 했다”며 “그렇다면 그 대비는 이태원파출소 직원이 했어야 했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경찰청, 서울청은 뭐하셨나. 경찰청장 뭐했나. 예상 못 했나”라며 “광화문집회에 그렇게 많은 기동대가 필요한가. 제 체감상으로는 VIP 연도경호에 동원된 인원보다 덜 지원해준 것 같다”고 했다. 이어 “일이 터졌으니, 112신고가 있었으니 책임은 일선 경찰관이 져야 하는 것이냐”라고 반문했다.
A씨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고 싶었다. 살려 달라 손 내밀던 모든 손을 잡아주지 못해서 그 기억들이 채 가시지 않아 괴로워하는 젊은 경찰관들”이라며 “자신을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현장 경찰관들에게 사고에 대한 책임까지 짊어지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라고 탄식했다.
그는 글에서 “이태원파출소 직원의 90%가 20, 30대 젊은 직원이고 그중 30% 이상은 시보도 끝나지 않은 새내기 직원과 기동대에서 현장경험 없이 일선으로 나온 직원이다. 항상 인원에 대한 고충이 있었고 늘 더 많은 인원이 필요했다”며 “인원 충원 제대로 해주셨는지 관련 부서에 먼저 묻는다”고 따졌다.
그러면서 “주말마다 있는 금토, 야간근무에 이태원 지구촌 축제에 연이은 이태원 핼러윈 행사, 주간 연장근무와 3일 연속 야간근무에 대기시간도 없이 112신고로 뛰어온 파출소 직원들”이라며 현장 고충을 언급했다.
A씨는 ‘112신고가 있었는데 현장통제를 왜 안 했나’라는 지적에 먼저 “112신고는 시간당 수십건씩 떨어진다. 이태원파출소는 그날 본 근무직원이 11명이었고, 탄력근무자 포함 총 30명 남짓 근무했다”며 “평상시 금·토요일과 야간에 15명 정도 근무하면서 80~100건의 신고를 처리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112신고 뛰어다니며 처리하기도 바쁜 상황에서 압사 사고를 예상해서 통제하고 있었다면 112신고는 누가 뛰나”라며 “혹여 강력사건이라도 떨어져서 누군가 죽었다면 왜 가만히 걸어가는 사람들 통제하느라 강력사건 못 막았느냐고 비난할 것”이라고 했다.
A씨의 글은 현재 삭제된 상태다.
경찰 내부 뒤숭숭… 누리꾼 “소총 주고 탱크 막으란 꼴”
‘이태원 사고 112대응 못한 이유 설명드립니다’라는 제목의 다른 글을 블라인드에 올린 현직 경찰관 B씨도 “경찰청장이 신고 대응 과정에서 미흡했고, 관련자를 강도 높게 감찰한다는 것에 동의하지 못한다”며 “지구대와 경찰서에서 발로 뛰며 사건을 처리해본 경험이 없어 현장을 모르니 신고 대응이 어쩌니저쩌니 그런 말씀을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그러면서 “이번 사고에서 경찰 내부로 좁혀 볼 때 책임 소재를 찾는다면 현장에서 한 명 더 살려보겠다고 발바닥 불나도록 뛰어다닌 현장 경찰관이 아닌 저기 높은 책상에서 회의하고 결재한 수뇌부가 아닐까 한다”고 말했다.
그는 “2만5000명이 운집한 대통령 퇴진 집회에 거의 모든 기동대가 차출되고, 그 규모의 4배이자 밀집도가 높은 장소에 10만명이 운집한 이태원에는 단 한 명의 기동경찰이 없었다”며 “그분(수뇌부)들은 사고가 날 것이라는 예상이 어려워서 기동대 배치와 지휘를 따로 하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라고 냉소했다.
블라인드에는 경찰 수뇌부에 대한 일선 경찰관들의 아쉬움이 담긴 글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 경찰관은 “동기가 이태원 참사 날 근무했다”며 “대화해보니 죽어라 일하고 살리려고 노력했는데 결과적으로 감찰받는다고 하니까 씁쓸하다는 게 느껴진다. 나까지 회의감이 온다. 이게 맞느냐”고 했다.
다른 경찰관은 ‘경찰관 죽이기’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우린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우리의 사명감을 이렇게 짓밟고 무시하는 이유가 뭔가. 대한민국 치안의 붕괴가 시작된 것 같다”고 한탄했다.
이태원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한 경찰관은 ‘사죄의 말씀 드립니다’는 제목의 글에서 “돌아가신 분들의 얼굴이 자꾸 떠올라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조금 더 제대로 했으면 한 명이라도 더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후회와 자책감이 밀려온다.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적었다.
그는 “경찰청장도 입장을 밝혔다지만 ‘안타깝고, 비통하다, 책임감을 느낀다. 애도의 말씀을 드린다’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거기에 행정안전부 장관이라는 사람은 경찰 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발언까지 했는데 자괴감을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이 경찰관은 “경찰청에서는 ‘초기 112 신고에 대한 대응이 미흡한 것이 문제’였으며, ‘고강도 감찰, 신속 수사’를 한다”며 “‘대응’의 문제는 지엽적인 측면에 불과하다. 현장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 정책적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전형적인 꼬리자르기식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현직 경찰관들의 글에 누리꾼 사이에서는 “소총 주고 탱크 왜 못 막냐고 욕하는 것”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한 누리꾼은 “현장에서 고생하는 분들이 불이익을 받는다면 그날의 노고를 아는 우리 모두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일선 경찰관이 무슨 죄인가. 지휘부가 직무유기를 한 것” “현장에서 목 터져라 울먹이며 소리치는 경찰관의 소리가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는 등의 반응도 이어졌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