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토끼 머리띠를 한 남성과 일행이 고의로 밀면서 시작됐다는 의혹이 확산하자, 당사자가 SNS를 통해 사실이 아니라며 억울함을 나타냈다.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 CCTV 등을 통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고 있다.
토끼 머리띠 남성이 이태원 참사의 주범이라는 소문은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이태원에서 겨우 살아 나왔다는 네티즌은 10월 30일 오전 3시35분 “내 뒤에 20대 후반처럼 보이는 놈이 ‘아 XX. X같네 밀자 애들아’ 이러고 친구들끼리 ‘밀어! 밀어!’ 이 XX함. 사람들은 뒤에서 밀어버리니까 우수수 넘어짐”이라고 전했다.
이 네티즌은 자신을 밀었다는 남성이 가르마펌에 토끼 머리띠를 썼다는 설명을 남겼다. 이후 온라인에서도 비슷한 후기 글이 올라왔다. 20대로 보이는 남성 5~6명이 “밀어”라고 외치며 밀었다는 내용이었다.
이 내용이 확산하자 네티즌들은 온라인에 올라온 사고 당일 영상을 살피며 토끼 머리띠를 쓴 남성을 찾아냈다. 이 남성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도 없이 온라인상에 퍼졌고, 네티즌들은 “이번 사태의 주범”이라며 “자수하라”고 비난했다.
이에 범인으로 주목된 남성은 지난 31일 자신의 SNS를 통해 “토끼 머리띠를 한 건 맞지만, 사고 당시 이태원을 벗어나 합정으로 갔다”고 해명했다.
이 남성은 “저와 친구가 핼러윈 사고 현장 범인으로 마녀사냥당하고 있다. 토끼 머리띠를 하고 그날 이태원에 방문한 사실은 맞지만, 사고 당시 저와 친구는 이태원을 벗어난 후”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 남성은 증거로 지하철 탑승 내역을 공개했다. 이태원 사고의 최초 신고 시각은 오후 10시15분인데, 이 남성은 오후 9시55분 이태원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오후 10시17분 합정역에서 내렸다. 이 남성은 “오해는 할 수 있겠지만 마녀사냥은 그만 멈춰주시길 바란다”며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네티즌들을 고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네티즌들은 “한 명 범죄자 만들기 쉬운 세상” “억울하겠다”며 과도한 범인 색출을 지양하자는 의견을 냈다. 다른 이들은 “문제 됐던 건 흰 토끼 머리띠인데 마녀사냥당하기 시작한 건 검정 토끼 머리띠여서 그분이 등판한 것”이라고 지적했고, “토끼 머리띠 잡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본질은 통제의 부재가 빚은 인재라는 것”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한편 경찰은 토끼 머리띠를 한 인물 등이 앞사람을 고의로 밀어 사고를 일으켰다는 의혹에 대해 “목격자 조사, 영상 분석 등을 통해 정확한 경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남구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장은 “목격자 진술이 엇갈려 추가로 경위를 확인할 예정”이라며 “(지금은) 현장 목격자들 진술의 신빙성을 검토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사실관계에 따라 혐의 적용 여부 등이 다를 수 있다”며 “상황이 되면 강제 수사까지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참사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총 475명으로 구성된 수사본부를 꾸린 상태다. 지금까지 목격자 44명을 조사했고, 사고 현장에 설치된 42곳의 52개 CCTV 영상을 확보해 분석 중이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미필적 살해, 과실치사죄 등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엄건웅 유원대 경찰소방행정학과 교수는 YTN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누구를 위해를 가할 의도로 밀었다면, 여러 형법적 부분이 걸려 있을 수도 있다”며 “고의 상해나 살인죄,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해 등의 죄목이 적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태원 참사’로 불안, 우울 등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은 정신건강위기상담전화(1577-0199)를 통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성훈 기자 hunh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