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에 안전사고 우려” 보고했다는데… 윗선 누락 왜?

입력 2022-11-01 06:21 수정 2022-11-01 10:40
지난 29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일대에 핼러윈을 맞아 인파가 몰려 대규모 인명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대원들이 구조 활동에 나서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지난 29일 이태원 참사 직전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서울 용산경찰서에서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사전 보고가 올라갔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상위 기관인 서울경찰청의 경찰 인력 운용계획에 이를 반영한 내용은 없었다. 이태원을 담당하는 기초자치단체인 용산구청이 2차례 회의를 열었지만 대규모 인원 집중에 대한 안전관리 대책은 빠져 있었던 사실도 드러났다.

31일 SBS 보도에 따르면 서울 용산경찰서 관계자는 “핼러윈을 며칠 앞두고 정보과 경찰관이 보고서 하나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해당 보고서의 내용은 ‘이번 핼러윈에 예상을 넘는 인파가 몰려 안전사고 우려가 있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SBS 화면 캡처

이는 코로나19 이후 3년 만에 거리두기 및 실외마스크가 모두 해제되면서 예년보다 더 많은 시민이 몰릴 것으로 예상한 보고였다. 이 보고서는 경찰 내부 전산망에 정식 등록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서울경찰청이 일선 경찰서 경비과장들과 회의한 뒤 작성한 경비 운용계획에는 이 같은 내용이 반영되지 않았다. 현장 통제를 맡은 용산경찰서 경비과가 정보 공유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서울경찰청이 일선 보고를 면밀히 살피지 않은 것인지 향후 확인이 필요한 대목이다.

SBS 화면 캡처

지난해 핼러윈 당시 영상에는 사고가 발생한 골목에 경찰관들이 2~3m 간격으로 배치된 장면이 나온다.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방역 대책의 일환이었지만 군중의 밀집을 막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올해 사고가 발생한 골목에는 인력 통제가 아예 이뤄지지 않았다. 인근 상인들 사이에서는 “경찰 두 사람만 거기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는 반응이 나왔다.

SBS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의 지난 29일 경찰 인력 운용계획서에는 ‘이태원’이나 ‘핼러윈’ 같은 단어는 적혀 있지 않았다. 이날 경찰은 전체 기동대 81개를 나눠 집회와 시위, 거점 시설 경비 등에 투입했다. 집회와 시위 21건에 70개 부대가 배치됐고, 거점 근무와 외국 공관 경비 등에 20여개 부대가 배정됐다.

SBS 화면 캡처

이날 2만5000여명이 운집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의 집회에는 기동대가 대거 배치됐다. 반면 최소 13만명이 모인 것으로 추산된 이태원 핼러윈 행사에는 기동대는 아예 없었고 경찰관 137명이 배정됐다. 지난해 일선 경찰관 85명에 기동대 3개 중대가 배치된 것과는 차이가 크다. 경찰청 관계자는 경찰관 수를 기준으로 “예년보다 더 많은 경찰력을 투입해 대비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용산구, 2차례 사전 회의… ‘인원 밀집 대책’ 빠져
용산구청의 사전 대비가 적절했는지 여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용산구는 지난 10월 26일 핼러윈을 앞두고 경찰, 이태원역장(지하철 6호선), 상인회(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와 4자 간담회를 열었다. 하지만 구청 측에서는 자원순환과 직원만 참석해 쓰레기 문제 등을 상인회에 안내하는 수준에서 그쳤다. 이 간담회에서 용산구와 경찰 사이 대규모 인원 밀집에 대비한 안전 대책은 논의되지 않았다.

다음 날인 27일 오후 2시에도 용산구는 ‘핼러윈 대비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는데 대규모 인원의 안전 관리를 위한 대책은 따로 거론되지 않았다. 28일 나온 이 회의의 보도자료 게시 제목은 ‘핼러윈데이 안전이 최우선’이었다.

용산구청의 대응에 대해서는 2주 전인 15~16일 이태원 ‘지구촌 축제’와 비교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 행사는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가 주최했고 서울시와 용산구가 후원했다. 당시 서울시와 구청을 사전 회의를 수차례 열었고, 축제 방문자의 안전관리 대책 등을 논의했다. 행사 지원을 위해 용산구 직원이 대거 투입됐고, 경찰은 도로 교통을 통제했다. 축제 기간 약 100만명이 방문한 것으로 추산됐지만 별다른 사고는 없었다.

용산구는 이에 사고 당일 이태원 상황은 지구촌 축제와는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했다. 지구촌 축제는 행사 개최 전례가 있어 방문객 규모 등을 예측하고 충분히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 핼러윈 데이는 행사 주최가 따로 없는 젊은 층의 자율적인 모임인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박희영 구청장은 31일 MBC에 “이건(핼러윈) 축제가 아니다”며 “축제면 행사의 내용이나 주최 측이 있는데 내용도 없고 그냥 핼러윈 데이에 모이는 일종의, 어떤 하나의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행정안전부는 앞으로 주최자가 없는 행사에도 지자체가 안전을 관리할 수 있도록 지침이나 매뉴얼을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시의회 역시 같은 내용을 반영한 조례안의 신설을 추진 중이다. 지역축제와 관련해 재난안전법 등 법령과 정부 안전관리 매뉴얼은 중앙행정기관이나 지자체, 별도의 주최 측 주도로 지역축제가 이뤄지는 경우 안전관리대책을 수립 및 실행하도록 하고 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