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당시 사고 현장에서 난간 위로 사람들을 끌어올리며 구조한 의인들의 사연이 전해졌다. 한 아프리카TV BJ는 사고가 발생한 골목길에 끼어 있다가 가까스로 구조된 뒤 자신도 적극적으로 다른 사람을 끌어올리는 데 동참했다. 이는 이 BJ가 생중계한 영상에 그대로 담겼다.
BJ 배지터는 지난 29일 압사 사고가 발생한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해밀톤 호텔 옆의 좁은 골목길에서 인파에 끼였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축제 생방송을 위해 이태원을 찾았다가 사고에 휘말렸다.
당시 영상을 보면 배지터는 골목에 진입한 뒤 인파에 떠밀려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그러다 한순간 사람들이 밀렸다. 여기저기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앞에서 밀린 사람들이 “뒤로! 뒤로!” “밀지마”라고 외쳤지만 소용없었다.
사람들 사이에 갇혀 있던 사람들은 골목길 가장자리 난간 위에 있던 시민의 도움을 받아 겨우 구출됐다. 그는 한동안 넋이 나간 듯 주저앉아 있었다. 그는 몸에 피가 통하지 않는 걸 느꼈고, 일시적인 호흡 곤란을 겪었다고 했다.
정신을 차린 그는 곧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과 함께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난간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의 손을 붙잡고 안간힘을 쓰며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난간에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자 한 남성은 “올리지 마요. 이제 못 올라와”라고 말했다. 곁에 있던 여성도 “못 올라와요”라고 외쳤다.
그래도 구조는 이어졌다. 그러자 이 남성은 “그만 올리라고”라고 언성을 높였다. 배지터는 그를 바라보며 “한 명만, 한 명만”이라고 말했다. 당시 난간 위에서 일부는 “위에도 꽉 찼는데 무슨 소리야” “못 올라와요”라고 말했지만, 배지터와 몇몇 사람들은 “한 사람만 더 구하자. 한 명만 더”라며 구조 활동을 이어갔다.
배지터는 30일 아프리카TV 채널 공지를 통해 “자고 일어났는데 혼자 웃고 떠들며 방송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며 “저는 내일까지 푹 쉬고 화요일에는 웃으며 방송할 수 있도록 멘털을 잡고 오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태원 참사 때 다치신 분들의 빠른 쾌유를 빌며 안타깝게 고인이 되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고 말했다.
그의 사연은 SNS에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퍼졌다. 누리꾼들은 “의인”이라며 그에게 감사를 표시했다. 다른 누리꾼들은 “사고 현장에 직접 있으셨는데 얼마나 무서우셨을지 감히 상상조차 가질 않는다. 힘드시면 심리치료 꼭 받으세요” “귀한 목숨 여럿 구하셨어요. 너무 고생하셨습니다. 당신은 대한민국 영웅입니다”라는 등의 댓글을 남겼다.
당시 사고 현장에는 이밖에도 여러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한 누리꾼은 “사람들이 위에서 손잡고 올라오라는데 그렇게 눈물 날 정도로 고마운 손은 처음이었다. 덕분에 살았다”고 다른 시민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했다.
또 다른 누리꾼은 “진짜 깔려 죽을 거 같아 구멍으로 숨 쉬면서 울었다. 진짜 내가 죽는구나 싶어서 오열하면서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살려주세요. 저 죽어요’ 했다. (난간) 위에 있는 언니 오빠들이 내 손 잡고 끌어올리고 내가 친구 밑에 (사람을) 끌어올리고 친구가 밑에 (사람을) 끌어올리고 그랬다”고 전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인근 업소의 한 직원은 “시신을 50구는 나른 것 같다”며 “시신들 아래 깔린 한 분이 ‘살려 달라’고 소리를 지르는 것을 발견해 바닥에서 겨우 꺼내드리기도 했다.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고 말했다.
한 국립병원 의사는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 “이태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다가 사고 소식을 듣고 심폐소생술(CPR)은 할 줄 아니까 도움이 될까 싶어서 이태원으로 갔다”며 CPR을 도운 일을 전했다. 당시 현장에서는 “심폐소생술 가능한 분 손 들어 달라”는 시민의 요청에 여러 시민이 달려나가 돕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