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생안’ 마련하자더니…푸르밀, 이번엔 돌연 ‘희망퇴직’ 모집 논란

입력 2022-10-28 15:38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 앞에 모인 농민들이 푸르밀의 일방적인 사업종료 통보에 항의하며 던진 우유들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 연합뉴스

다음달 30일 사업종료를 밝힌 유제품 기업 푸르밀이 상생안을 논의하던 중 돌연 희망퇴직을 받기로 했다. 상생안 논의가 시작된 지 나흘 만에 희망퇴직 카드를 꺼내들면서 상생안 마련에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신동환 푸르밀 대표이사는 이날 회사 게시판을 통해 다음달 9일까지 일반직, 기능직 전 사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자를 모집한다고 공고했다. 통상임금과 상여금을 합친 2개월 치 위로금, 퇴직금, 연차수당을 지급하겠다는 게 조건이다.

푸르밀 희망퇴직 신청자 모집 공고

신 대표는 다음달 30일부로 사업종료를 예고하며 지난 17일 전 직원에게 정리해고를 알리는 이메일을 보냈다. 푸르밀 사업종료는 임직원, 협력업체, 낙농가 등과 사전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되면서 위법성 논란이 불거졌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회사가 직원을 해고하는 경우 근로자 대표에게 해고 50일 전까지 이를 알리고 합의해야 한다. 하지만 푸르밀은 사전 조치 없이 해고 시점 40여일 전에 전직원 350여명에게 일방적으로 해고를 알렸다.

위법성 논란이 계속되자 신 대표는 지난 24일 푸르밀 노조와 상생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노조 측은 푸르밀 사업종료에 반대하며 공개 매각을 진행하고 정리해고 통보를 철회하라고 주장했다. 양측은 오는 31일 2차 교섭을 이어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돌연 희망퇴직 신청자를 모집하면서 직원들이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보인다.

푸르밀이 폐업이 아니라 사업종료를 택한 것에 대한 여러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오너 일가가 부동산, 기계 등 법인 자산을 매각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수백억원대 법인세를 아끼려는 꼼수로 기업청산 대신 사업종료를 진행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받고 있다. 푸르밀이 법인을 청산하면 그동안 영업손실에 따른 법인세 면제 혜택을 반납해야 한다.

푸르밀에 원유를 공급해온 농부들이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 앞에서 항의 집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푸르밀의 일방적인 사업종료 통보는 낙농가에도 직격탄을 안기면서 낙농가의 반발도 사고 있다. 푸르밀에 40여년 동안 원유를 공급해온 농민 약 50명은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푸르밀 본사에서 사업종료 통보에 항의하며 피해 보상을 요구했다.

농민들은 이날 신 대표와 면담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않았다. 신 대표 대신 오태환 푸르밀 비상대책위원장이 나타났다. 오 위원장은 신준호 전 푸르밀 회장의 딸인 신경아씨가 대표로 있는 대선건설 관계자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푸르밀 본사 앞에서 항의집회를 연 이상옥 전북 임실군 낙농육우협회장은 “원유공급 해지 내용증명을 받은 뒤 푸르밀 대표에게 면담을 요청했으나 어떤 답도 받지 못했다”며 “20여 농가가 진 부채가 총 120억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관련 낙농가는 낙농진흥회에도 가입하지 않고 푸르밀에만 원유를 납품해 왔다. 농민들은 “푸르밀이 각 농가에 기준 원유량을 시가로 인수하고 계약해지에 따른 손해를 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 26일에는 푸르밀 직원 100여명이 본사 앞에서 일방적인 사업종료와 해고 통보를 철회하라는 집회를 열었다. 1978년 푸르밀 설립 이후 직원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집회는 2시간 넘게 진행됐으나 사측에서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푸르밀은 1978년 4월 설립된 롯데우유에서 시작한 유업체다.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사해 고(故) 신격호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신준호 회장이 회사를 인수했다. 2009년엔 롯데우유에서 푸르밀로 사명을 바꿨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