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나아가지 못했다” 취임식 뺀 회장 이재용의 다짐

입력 2022-10-27 16:39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회장으로 승진했다. 2012년 12월 부회장 자리에 오른 지 10년 만이다. 이 회장은 “몇년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면서 본격적으로 ‘뉴 삼성’을 추진한다는 뜻을 강하게 내비쳤다.

삼성전자는 27일 이사회를 열고 이 부회장의 회장 승진 안건을 의결했다. 이사회는 “글로벌 여건이 악화하는 상황에서 책임경영 강화, 경영 안정성 제고,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이 절실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별도의 취임행사를 갖지 않고 예정된 일정을 소화했다. 이날 서울 서초구 서울지법 앞에서 “어깨가 많이 무거워졌다. 국민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뢰받고 사랑받는 기업을 만들어보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면서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앞서 이 회장은 고(故) 이건희 회장의 2주기였던 지난 25일 삼성그룹 사장단과 만나 소회를 털어놨다. 이 회장은 “(이건희) 회장님의 치열한 삶을 되돌아보면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진다. 선대의 업적와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야 하는 게 제 소명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타깝게도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새로운 분야를 선도하지 못했고, 기존 시장에서 추격자들의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고 현실을 진단했다. 이어 “돌이켜 보면 위기가 아닌 적이 없다.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은 더 과감하고 도전적으로 나서야할 때다”고 덧붙였다.


기술과 인재를 핵심가치로 놓고 ‘뉴 삼성’을 만들겠다는 청사진도 제시했다. 이 회장은 “창업 이래 가장 중시한 가치가 인재와 기술”이라면서 “성별, 국적을 불문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를 모셔오고 양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에 없는 기술에 투자해야 한다. 미래 기술에 우리의 생존이 달려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인재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면서 새로운 조직문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1991년 12월 삼성전자에 부장으로 입사한 이 회장은 2004년 삼성전자와 소니 합작사의 등기이사에 앉으면서 본격적으로 경영에 참여했다. 2007년 1월 전무 겸 최고고객책임자(CCO), 2012년 12월 부회장에 올랐다. 2014년 5월 이건희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자 경영 전면에 나섰고, 2015년 5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 이사장에 선임되면서 그룹 승계를 위한 상징적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 회장은 2016년 10월에는 삼성전자 등기이사에 앉았다.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으로 지정됐다. 이후 회장으로의 승진 얘기가 나왔지만,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되면서 시기가 늦춰졌다. 이 회장은 지금도 일주일 1, 2회 정도에 걸쳐 계열사 부당합병과 회계부정 의혹 관련 재판을 받고 있다. 회장으로 승진했지만, 한동안 사법리스크는 계속될 전망이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