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순일 전 대법관이 변호사 등록을 신청했지만 대한변호사협회가 자진 철회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권 전 대법관은 지난해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이 불거질 때 화천대유자산관리 고문으로 활동한 이력이 드러났고, 현직에 있을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유리한 판결을 했다는 ‘재판거래’ 의혹이 제기됐다. 그는 일부 사건으로는 여전히 수사 선상에 올라있기도 하다.
27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권 전 대법관은 지난달 말 서울변호사회에 변호사 등록신청서를 접수했으며, 변협은 한달 가량 적격성 검토를 진행한 끝에 최근 자진 철회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권 전 대법관이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에 연루돼 변호사법과 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는 상황에서 변호사 등록 신청을 한 점이 고려됐다.
변협은 공문에 “지금까지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청렴과 공정함의 상징으로서 후배 법조인들의 귀감이 되어야 할 전직 대법관의 모습과는 지극히 거리가 멀다”고 밝혔다.
권 전 대법관은 2019년 7월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당시 경기지사였던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할 때 ‘캐스팅 보트’였다. 말석부터 의견을 제시했는데 대법원장 직전 그가 의견을 표명할 때까지 5대 5의 상황이었다. 권 전 대법관이 파기환송 의견을 내면서 6대 5로 기울어졌고, 대법원장은 다수의견에 서는 관례에 따라 김명수 대법원장이 이에 동참하면서 7대 5로 무죄 취지 파기환송이 결정됐다.
권 전 대법관은 그해 9월 대법관에서 퇴임한 뒤 11월부터 김만배씨의 화천대유 고문으로 일했고, 월 1500만원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화천대유가 로비 자금을 뿌린 이른바 ‘50억 클럽’ 리스트에도 이름이 거론됐다. 현재 경기남부경찰청은 권 전 대법관을 변호사법·공직자윤리법 위반 혐의로 수사 중이다. 검찰 역시 뇌물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변협은 “국회가 대법원에서 전달받은 출입기록에 따르면 대장동 개발의 인허가권자였던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심리가 대법원에서 계류돼 있던 기간 동안 권 전 대법관은 자신의 집무실에서 화천대유 김만배씨를 8차례 만났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혹이 남아 있고, 언행 불일치 행보로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만큼 더욱 깊이 자숙하고 겸허하게 처신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다만 변협은 권 전 대법관이 등록 신청을 철회하지 않으면 그대로 신청을 받아들여야 한다. 변호사법은 변협이 변호사 등록신청을 받은 날부터 3개월이 지날 때까지 등록하지 않거나 등록을 거부하지 않은 때는 등록이 된 것으로 본다. 변협도 권 전 대법관이 대장동 의혹에 연루돼 있지만 사법처리까지는 되지 않은 만큼 등록 신청을 거부할 법적 근거가 현재로서는 없다고 보고, 자진 철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