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른은 금관악기지만 소리가 따뜻하고 부드러워서 목관, 현악 등 다른 악기들과 조화롭게 어우러진다. 하지만 오케스트라 악기 가운데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명문 오케스트라의 관악기 수준은 호른 연주자들의 기량으로 평가될 정도다.
호른 연주가 어려운 것은 우선 마우스피스가 금관악기 가운데 가장 작은 데다 관은 가장 길어서 소리를 내는 것부터 힘들다. 음정도 워낙 섬세해 밸브나 피스톤이 잡아내지 못하는 미세한 소리는 연주자가 나팔 출구를 손으로 막아 조절해야 한다.
지난해 영국 본머스 심포니의 상주 음악가가 된 독일 출신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31)는 연주할 때마다 관객에게 놀라움과 경탄을 준다. 클리저가 두 팔이 없기 때문이다. 어떤 악기든 연주자들에게 두 팔은 필수 요건이다. 호르니스트의 경우 왼손으로는 음정 조절 밸브를 누르고 오른손으로는 나팔에 손을 넣어 음색과 음량을 변화를 조절한다.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는 클리저는 왼발을 이용해 호른의 벨브를 조작하고 오른손이 해야 할 일은 모두 입술이 대신한다.
클리저는 5살 때 우연히 들은 호른의 음색에 매료돼 부모님을 졸라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3살 때인 2004년 하노버 음대 예비학생이 됐고 3년 후 정식 입학했다. 이어 2008~2011년엔 독일 국립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했다. 22살인 2013년 발표한 첫 앨범 ‘꿈,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낭만음악’으로 이듬해 독일의 저명한 음악상인 에코 클래식상 ‘올해의 영 아티스트상’을 비롯해 다양한 상을 받았다. 그리고 같은 해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각주: 세상을 정복한 팔 없는 나팔수’를 출간한 뒤 자신처럼 양팔을 쓸 수 없는 음악가들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클리저는 특히 최근 SNS를 통해 연주자로서 자신의 일상과 무대 뒷이야기를 소개하며 대중과 활발히 소통하고 있다.
클리저가 2014년 에코 클래식상 시상식에서 야닉 네제-세겡의 지휘로 뮌헨 필하모닉과 함께한 생상의 ‘로망스’ 실황 연주는 온라인에서 엄청난 화제를 불러왔고 이후 그가 전 세계 무대에 초청받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국에도 2015년 금호아트홀 연세 개관 음악제를 시작으로 2018·2019년 제주국제관악제에 참가한 적이 있다.
클리저가 오는 11월 다시 한국을 찾는다. 5일 울산현대예술관 대공연장과 9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조재혁의 피아노 반주로 베토벤의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바 장조’ Op.17 등 다수의 작품을 연주한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