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인’ 김기인이 되돌아본 2022시즌

입력 2022-10-26 22:13
LCK 제공

광동 프릭스는 올해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스프링 시즌을 4위, 서머 시즌을 7위로 마쳤다. 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는 2022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26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기인’ 김기인을 만나 올 시즌에 대한 소회를 들어봤다.

-공식적인 2022시즌 일정이 모두 마무리됐다. 올 시즌은 김 선수에게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시작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처음보다는 나은 결과를 낸 시즌으로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시즌 초반에 선수들끼리 팀워크가 잘 맞지 않았다. 선수마다 각자 원하는 플레이가 있기 마련이다. 팀원끼리 거기에 서로를 맞췄다. 나 또한 다른 선수의 콜을 들어주는 플레이 위주로 하고자 했다.”

-올 시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하나 꼽는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전승 행진 중이던 T1을 꺾었던 일이다. 세라핀을 기용했던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사실 경기 전날 야간 스크림에서 코치진의 제안으로 세나·세라핀을 처음 활용했다. 두 세트 모두 결과가 좋았기에 다음날 실전에서 바로 사용했다. 바텀 듀오의 챔피언 숙련도가 높았고, 운도 따른 덕에 T1을 잡을 수 있었다.”

-반대로 아쉬운 점을 꼽는다면.
“서머 시즌에 아쉬운 점이 정말 많았다. 당시 우리는 플레이오프 진출을 목표로 하고 있었는데, 반드시 잡아야 하는 경기들을 모두 놓쳤다. 그게 아쉽다. 시즌 초반에 선수 개개인의 폼이 제 궤도에 올라오지 않아서 고전했던 것도 아쉽다.”

-순간이동과 내구도 패치가 적용된 시즌이기도 했다. 적응에 어려움은 없었나.
“패치에 따른 변화에 적응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내구도 패치가 라인전 구도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메타 변화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패치 이후 스크림을 해보니 어떤 판은 빠르게 끝나고, 또 어떤 판은 길어지더라. 초반과 후반 중 어디에 강점이 있는 조합을 짜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앞서 순간이동 패치가 김 선수만의 구도 데이터에 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를 하기도 했다.
“나는 내구도보다 텔 패치가 라인전 상성을 바꾼단 느낌을 받았다. 그레이브즈 대 트린다미어가 한창 나오던 시기였다. 당시 내 데이터로는 그레이브즈가 1100골드를 모아서 라인을 민 뒤 귀환하고, 판금 장화를 산 뒤 미니언에 텔을 타면 됐다. 그러면 트린다미어는 귀환 타이밍을 잡지 못하고 포탑에 꼼짝없이 박히는 구도였다.
그런데 텔 패치 이후로는 무조건 포탑에 순간이동을 해야 하지 않나. 그레이브즈가 라인을 밀고 귀환하면 그 사이에 트린다이머가 라인을 타워까지 다 밀어 넣을 수가 있게 되더라. 한동안은 내 데이터와 다른 양상의 구도가 나와 어지러웠다. 이제는 새 구도에 익숙해졌다.”

-아크샨처럼 조커 픽을 기용한 시즌이기도 했다.
“스크림에서 많이 쓰진 않았는데, 썼을 때마다 결과가 좋아서 실전에서 꺼내 들었다. 담원 기아전에서 실수했던 게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집중 공격을 들어야 했는데 정복자를 드는 바람에 초반 라인전 압박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이득을 크게 보지 못했던 것 같아 아쉽다. 사실 그게 아니더라도 이기는 판이었는데 내가 상대방에게 잘려서 졌다.”

-대회가 연기되긴 했지만,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소집되기도 했다.
“쉽게 경험하지 못할 일이라고 생각해 꼭 아시안게임에 나가고 싶었다. 대회가 미뤄져 정말 아쉽다. 여전히 욕심이 나지만, 내년 일은 내년에 생각하려고 한다. 만약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연히 나갈 것이다.”

-함께 소집된 선수들과 친분을 다지기도 했나.
“나는 한 팀에만 머물렀다 보니 다른 팀 선수들과 교류하는 일이 흔치 않았다. 좋은 경험이 됐다. 나는 낯가림을 하고 상대방과 친해져야 말을 좀 하는 편이다.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성격은 아니다. 합숙에서 만난 선수들과 친해지기가 쉽지 않더라.(웃음)”

-‘제우스’ 최우제와 1대1 연습을 한 사실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엘림’ (최)엘림이를 통해 ‘제우스’ 선수의 친구 추가 요청을 받았다. 스크림이 끝난 뒤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제우스’ 선수가 ‘1대1 가능하실까요’하고 귓속말을 보내오더라. 그래서 그때 1대1을 몇 판 했다. 그런데 사용자 설정 게임 기록이 버그로 남았다. 그게 화제가 돼 신기했다. 그 이후로는 그와 1대1을 하지 않았다.”

-많은 탑라이너들이 김 선수를 롤 모델로 꼽는다. 이유가 무엇일까.
“대중들의 평가도 그렇고, 내가 생각하기에도 공수 밸런스가 좋은 편이어서 그런 것 같다. 팀에 도움이 되는 탑라이너를 추구하다 보니 그렇게들 봐주시는 것 같다. 탑라이너의 스타일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스타일이 플레이하기도 편하고 나한테도 맞는 옷 같다.”

-2017년 겨울 광동에 입단한 뒤 한 팀에만 5년간 있었다.
“5년 동안 한 팀에만 있었으니 좋았던 기억도, 그렇지 않았던 기억도 많다. 한 팀에 있어서 누린 장점이 많았다고 생각한다. 시즌이 끝나면 이적 시장 관련해 고민할 게 없었고, 그래서 시즌을 준비하기가 편했다. 반대로 한 팀에만 있어서 마인드가 굳어진 점도 있다.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광동에 있는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을 꼽는다면.
“첫 아시안게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국가대표로 나섰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당시에 신인이었고, 경력이 많이 쌓이지 않은 상태였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프로게이머로서의 마인드도, 게임 실력도 많이 배웠다. 아시안게임에 나선 건 내게 좋았던 일, 잘했던 일로 남았다.”

-‘국대 탑’이란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고 들었다.
“그렇다. 나는 그 별명을 가장 좋아한다.”

-광동 소속으로 치렀던 게임 중 가장 어려웠던 경기를 하나 꼽는다면.
“심리적으로 힘들었던 게임이야 많았지만, 부담감이 가장 심했던 건 2018년 리프트 라이벌즈 결승전 5세트다. 세트스코어 2대2 상황에서 우리 팀이 나가게 되니 부담감이 크더라. 많이 아쉬웠던 경기로 기억한다.”

-이듬해 인터뷰에서 김 선수가 ‘샤오후’ 리 위안하오의 라인전 능력을 칭찬했던 적이 있다. 지난해 ‘샤오후’가 탑라이너로 포지션을 변경하고, 좋은 모습을 보여주니 당시 김 선수의 고평가가 떠오르더라.
“자세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당시에 ‘샤오후’ 선수가 블라디미르를 했을 것이다. 라인 관리 같은 것을 잘해서 디테일이 좋다고 느껴 그 선수를 칭찬했던 기억이 난다. 내가 미드라이너를 많이 해본 것은 아니지만 탑과 미드는 라인의 길이나 성격이 다르지 않나. 아마 라인전 디테일도 다를 텐데 ‘샤오후’ 선수가 그때 탑라인전을 잘했다.”

-광동에 몸담은 동안 가장 고마운 사람을 하나 꼽는다면.
“고마운 사람이 정말 많은데, 한 명을 꼽으라니 생각보다 어렵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 가장 고마운 사람은 최연성 전 감독님이다. 나를 팀에 뽑아주시기도 했고, 계시는 동안 정말 잘 대해주시기도 했다. 나를 프릭스의 선수로 만들어주신 분이 최 감독님이시다. 선수의 마인드와 관련해서도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고마운 사람이다.”

-롤드컵이 한창 진행 중이다. 경기를 챙겨보고 있나.
“DRX와 에드워드 게이밍(EDG)의 8강전만 제대로 시청했고, 나머지 경기는 대부분 하이라이트로 봤다. 2세트 막판 DRX의 백도어 공격이 막히길래 그대로 0대 3으로 끝나려나 싶었는데 기어코 역전을 해내더라.(웃음) 현 시점에선 T1이 가장 세 보인다. 사실 요즘 대회를 그렇게 집중해서 보진 않았다.”

-김 선수는 스프링 시즌 때도 T1의 경기를 보며 운영에 대해 연구했다고 했다.
“스프링 시즌엔 T1이 다른 팀들보다 빠르게 판단했다. 경쟁자들보다 반 발자국 내지는 한 발자국 빠르게 움직였다. 반면 서머 시즌의 젠지는 모든 라인의 체급이 좋아 쉽게 무너지지 않는 팀이란 인상을 받았다.”

-매년 강팀들을 상대해봤을 텐데, 체감상 가장 강했던 상대를 하나 꼽는다면.
“2020년의 담원 게이밍이다. 그해 서머 시즌에 담원과 붙으면 대부분 초반에 게임이 터졌다. 그때 ‘빡센’ 상대가 많았다. 같은 시즌의 젠지도 정말 강했다. 내가 남들보다 더 그렇게 느낀 바도 있을 것이다. 우리가 아마 해당 시즌에 젠지 상대로 전패를 당했다.”

-인터뷰를 마무리하겠다. 끝으로 하고 싶었던 얘기가 있다면.
“항상 나를 믿고 응원해주시는 팬분들이 많다. 그런데 매년 충분히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응원에 보답해드리지 못하는 것 같아서 그 부분이 늘 죄송하다. 내년에는 좋은 성적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든다. 나를 항상 믿고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께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