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관한 LG아트센터 서울의 블랙박스 극장 U+ 스테이지에는 컨테이너 3개가 놓여 있다. 이들 컨테이너에서는 지난 22일부터 영국 이머시브 씨어터 그룹 다크필드의 3부작 ‘코마’ ‘고스트쉽’ ‘플라이트’가 각각 공연되고 있다.
‘코마’는 침대로 가득 찬 병실, ‘고스트쉽’은 긴 테이블과 의자들로 채워진 회의실, ‘플라이트’는 비행기 내부의 모습이다. 이들 공간이 암흑 상태가 된 후 관객은 헤드폰에서 들리는 소리에 집중하는 가운데 어느새 초현실적인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다. 360도로 펼쳐지는 입체음향과 감각을 자극하는 특수효과를 통해 관객은 점차 다른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코마’에서는 관객이 코마 상태에 빠지는 듯한 경험을 하며, ‘고스트쉽’에선 영혼과 대화하는 모임을 체험하고 ‘플라이트’에선 비행기를 타고 알 수 없는 세계로 가는 과정을 경험한다. 1개의 컨테이너마다 최대 30명의 관객들이 동시 참여할 수 있으며, 공연별 러닝 타임은 약 30분이다. 3편은 각각 독립된 공연으로 관객들은 원하는 공연을 선택하여 예매할 수 있다.
요즘 국내에서도 심심치 않게 선보이는 ‘이머시브’ 공연은 ‘몰두하다’ ‘몰입하다’는 뜻을 가진 영어 ‘이머시브(Immersive)’에서 출발했다. 관객이 무대 위 배우들의 연기를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며 만들어가는 것이 특징이다. 이머시브 공연의 인기는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가 2011년부터 미국 뉴욕에서 공연 중인 ‘슬립 노 모어’가 큰 역할을 했다. ‘슬립 노 모어’는 창고를 개조해서 만든 호텔에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가 펼쳐지는데, 관객은 마치 맥베스의 성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에 직접 참여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다크필드는 극작가 겸 소설가 글렌 니스와 음향디자이너 데이비드 로젠버그가 2016년 관객들에게 몰입형 체험극을 선보이기 위해 결성했다. 이듬해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고스트쉽’을 처음 선보여 큰 인기를 얻은 뒤 2018년 ‘플라이트’, 2019년 ‘코마’를 잇따라 선보이며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인간의 감각 기관 가운데 70~80%의 비중을 차지하는 시각을 차단한 뒤 청각 등 다른 감각에 집중하게 만드는 다크필드는 이머시브 공연 중에서도 독특하다. 이후 다크필드는 이후 BBC라디오와 협업한 ‘데드하우스’, 온라인으로 감상하는 ‘다크필드 라디오’ 시리즈 등을 선보여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큰 주목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도 LG아트센터 서울의 공연에 앞서 우란문화재단이 2020년 다크필드가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 맞춰 제작한 온라인 체험 프로그램인 ‘더블’을 선보인 데 이어 2021년 ‘플라이트’를 선보인 바 있다.
다크필드 예술감독인 글렌 니스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암흑’을 콘셉트로 다양한 감각에 어필하는 공연을 만들게 된 것에 대해 “데이비드와 같이 작업하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관객들이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고 싶었다. 완전 암전과 360도 입체음향은 관객 개개인의 귀에 동시에 속삭일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요즘 유행하는 이머시브 공연은 관객들이 작품과 좀 더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데서 비롯됐다. 당연히 전통적으로 극장에서 관람하는 경험과 다를 수밖에 없다. 당연히 작품 제작 방식 역시 내러티브가 중요한 전통적 공연과 다르다. 니스는 “우리는 ‘이야기’에서 작품을 시작하지 않는다. 대신 관객의 배치 등 작품의 디자인적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역순으로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구상한다”면서 “소리를 보강하기 위한 특수효과 등 작품의 모든 요소는 오직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고려해서 집어넣는다”고 덧붙였다.
다크필드의 작품에 대해 ‘이머시브 오디오 퍼포먼스’나 ‘환각 오디오 드라마’ 등 다양한 수식어가 있지만, 니스와 로젠버그가 선호하는 것은 “완벽하게 설계된 예술적 테마파크 라이드(놀이시설)”다. 다크필드의 작품이 공포, 놀라움, 무서움 등을 유발하지만 예술적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니스는 “처음부터 무섭게 할 의도는 없었다. 그런데, 어둠 속에서 입체음향을 사용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관객들이 공통으로 불편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2016년 다크필드를 만들어 강렬하고 짧은 공연을 만들고 있다”면서 “현재 어린이들을 위해 어둠을 무서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공연을 구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