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2023년도 정부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그동안 빼놓지 않았던 ‘자유’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경제’를 13차례 말했다. 지정학적 위기와 세계적인 경기 둔화 흐름에서 사회적 약자 중심의 복지,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투자를 강조하며 예산 처리를 국회에 호소했다.
윤 대통령은 25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새 정부의 첫 번째 예산안을 국민과 국회에 직접 설명을 드리고, 국회의 협조를 부탁드리고자 5개월여 만에 다시 이 자리에 섰다”며 “우리를 둘러싼 대내외 여건이 매우 어렵다. 세계적인 고물가, 고금리, 강달러의 추세 속에서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커지고 경제의 불확실성은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취약계층과 사회적 약자들이 입는 고통은 점점 커지고 있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하면서 금융 안정성과 실물 경제 성장을 도모하는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간의 국제신인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며 “산업과 자원의 무기화, 공급망의 블록화라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북한의 연이은 탄도미사일 도발과 7차 핵실험 준비로 엄중해진 안보 환경을 역설하고, 앞선 취임사와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 언급한 우리 정부의 ‘담대한 구상’을 통한 정치·경제적 지원을 복기하며 “경제와 안보의 엄중한 상황을 극복해 나가기 위해서는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국회의 협력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이날 ‘경제’를 13차례, ‘투자’를 9차례, ‘산업’을 5차례 거론했다. ‘약자’도 7차례 말했다.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지원’이다. 모두 32차례 등장했다. 윤 대통령은 약자와 취약계층 관련 예산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지원’을 여러 차례 말했다. 사회적 약자 지원에 예산과 정책의 중점을 두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직접 채택한 것으로 알려진 표현인 ‘약자 복지’는 문재인 정부 정책을 ‘표를 얻기 위한 정치 복지’로 규정하며 반대 개념으로 제시한 용어다. 윤 대통령은 “경제가 어려울수록 더 큰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 책무”라며 “정부는 재정 건전화를 추진하면서도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을 더욱 두텁게 지원하는 약자 복지를 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세계적인 고금리와 금융 불안정 상황에서 국가 재정의 건전한 관리와 국제신인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경제 성장과 약자 복지의 지속 가능한 선순환을 위해 국가재정이 건전하게 버텨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이 지난 5월 취임사에서 35차례 사용했고, 이후 연설마다 언급해온 ‘자유’는 이날 시정연설에서 명시적으로 언급되지 않았다. 자원 무기화, 공급망 블록화에서 협력할 대상으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이라는 식으로 자유의 가치를 에둘렀다.
윤 대통령은 “예산안은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지도이고 국정 운영의 설계도”라며 “정부가 치열한 고민 끝에 내놓은 예산안은 국회와 함께 머리를 맞댈 때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우리 경제를 둘러싼 불확실성이 지속되고 있는 시기에 국회에서 법정기한 내 예산안을 확정해 어려운 민생에 숨통을 틔워주고, 미래 성장을 뒷받침해 주시길 기대한다”며 시정연설을 끝냈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18분28초로 사상 최단 시간으로 기록됐다. 2008년 10월 26분간 진행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최단 시간 기록을 경신했다. 특히 이날 시정연설은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헌정 사상 첫 ‘보이콧’으로 절반 이하의 인원만 참석한 채 진행됐다. 민주당은 이날 이재명 대표를 노린 검찰 수사 등에 반발해 본회의장 밖에서 항의 팻말을 들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