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3일(현지시간) 필리핀 세부 막탄공항에서 악천후 속 착륙 과정에서 활주로를 이탈했던 대한항공 여객기에 탔던 승객이 당시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24일 필리핀 세부 전문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사고 났던 KE631 탑승했던 사람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이 글을 올린 작성자 A씨는 비행기가 자칫 민가를 덮칠 수도 있었던 위급했던 상황과 함께 영화에서나 보던 비상시 “머리 박아” 구호가 나온 장면, 착륙 후 안심하던 순간 곧바로 비행기 동체가 땅에 충돌했던 일 등을 전했다.
A씨는 “사고 직후 구글맵 켜보니 공항 끄트머리에 비행기가 있었다. 도로를 넘어 민가를 쳤을 뻔했으나 다행히 구조물을 박고 멈춘 듯하다”며 “탈출 후 보니까 바로 앞에 민가였다. 민가를 덮치지 않게 일부러 구조물을 박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고 했다.
이어 “랜딩 자체는 스무스했는데 비 때문인지 속도가 생각만큼 줄지 않고 미끄러진 듯하다”고 했다.
그는 “진짜 영화 한 편 찍었다”며 “비상착륙한다는 기장의 방송 이후 랜딩 시도하자 모든 승무원이 소리를 지르는데, 처음에는 이 소리 지르는 것 때문에 더 놀랐다”고 했다.
그러면서 “(승무원들이) ‘머리 박아(head down)’를 반복하며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며 “무릎 사이에 얼굴을 박으라는 데 임산부라 쉽지 않았다. 배도 찡기는 것 같았다”고 했다.
착륙 직후 승객들이 안심했다가 갑작스러운 충돌이 벌어진 상황도 언급했다.
A씨는 “그런 상황에서 생각보다 스무스한 랜딩에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들고 웃으며 박수치며 안도하는데, 남편한테 ‘아직 고개 들지마, 혹시 모르니까 고개 숙이라’고 하자마자 쾅쾅쾅 엄청난 소리와 함께 미친듯한 충격이 가해졌다”며 “5초 이상 충격이 가해진 것 같다. 비행기 전체가 정전되고 매캐한 냄새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울고불고 난리 났다”고 말했다.
A씨는 “바로 탈출하진 못하고 어디 화재가 있는지, 혹시 위험하진 않은지 전 크루가 확인 후 미끄럼틀을 펼쳐 내려왔다”며 “맨날 방송 때 미끄럼틀이 구명보트 역할도 한대서 궁금했는데, 이런 식으로 확인하게 될 줄 몰랐다. 미끄럼틀이 아주 크고 구명보트로 이용할 만하다”고 했다.
그는 “탈출 후에도 비행기 폭파 위험 때문에 멀리 떨어져야 했다”며 공항서 대기 후 새벽에 현지에 있는 호텔로 이동해 휴식을 취했다고 전했다.
대한항공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사고가 발생한 KE631 편은 지난 23일 오후 7시30분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했다. 항공기는 당초 세부공항에 이날 오후 10시 도착 예정이었는데 기상 악화 등으로 인해 예정보다 1시간 늦은 오후 11시7분 도착했다.
이후 두 차례에 걸쳐 착륙을 시도했으나 기상 악화로 착륙에 성공하지 못하고 실패 접근(Missed Approach)했다. 이후 세 번째 시도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으나 활주로를 300m가량 지나쳐 정지(Over Run)했다.
여객기는 활주로를 지나 수풀에 멈췄고, 착륙 과정에서 바퀴와 동체 일부가 파손됐다. 이후 승객들은 슬라이드를 이용해 비상 탈출했다. 당시 여객기에는 승객 162명과 승무원 11명이 타고 있었다. 인명 피해는 따로 발생하지 않았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