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 내려온다’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이날치는 2018년 전방위 뮤지션 장영규가 판소리 ‘수궁가’를 모티브로 한 양정웅 연출 음악극 ‘드라곤킹’의 음악을 맡은 데서 시작됐다. 장영규는 안이호 등 소리꾼들과 함께 수궁가를 새롭게 해석한 음악을 만든 데 이어 이듬해 정식으로 밴드를 결성했다. 밴드 이름인 이날치는 19세기 남사당패 출신 소리꾼 이날치(1820~1892)에서 가져온 것이다. 현재 밴드는 베이시스트 장영규와 박준철, 드러머 이철희, 보컬 안이호 권송희 신유진 이나래로 이뤄져 있다.
이날치는 밴드 결성 이후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하며 점점 이름을 알렸다. 특히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안무가 김보람의 앰비규어스 댄스 컴퍼니와 함께 선보인 ‘범 내려온다’ 퍼포먼스 영상이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범 내려온다’가 삽입된 한국관광공사 홍보영상은 온라인 누적 조회수 6억 뷰를 돌파했을 정도다. 2020년 발표된 정규 1집 ‘수궁가’는 ‘범 내려온다’를 포함해 ‘어류’ ‘토끼’ ‘호랑이’ ‘자라’ 등 11곡으로 구성됐다. 이날치는 ‘수궁가’ 음반 수록곡들을 가지고 지난 2년간 국내외 무대를 부지런히 다녔다.
이날치가 물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로 돌아온다. 오는 28~30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선보이는 ‘물 밑’ 공연에서다. 데뷔앨범 ‘수궁가’가 ‘드라곤킹’ 공연을 발전시켜 나온 것처럼 이날치의 두 번째 앨범 역시 이번 ‘물 밑’ 공연의 음악들을 발전시켜 만들어질 예정이다.
‘물 밑’은 판소리 다섯 마당(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과 무관한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로, 생명의 근원을 찾아가는 천문학자의 여정을 담고 있다. 장영규와 연극 ‘시련’ ‘장 주네’ ‘백치’ 등을 함께 한 박정희 연출과 감각적인 무대를 선보여온 여신동 무대 디자이너가 창작진으로 참여한다.
지난 19일 LG아트센터 서울에서 만난 이날치의 장영규는 “이날치 음악에서 판소리의 비중이 꽤 크기 때문에 이번에도 ‘수궁가’ 외의 남은 판소리 다섯 마당 가운데 가져와 쓸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또 옛날이야기를 가져오면 계속 프레임이 덧씌워지는 것 같아서 벗어나고 싶었다”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면서 지금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가 앞으로 가야 할 길이라 생각했다”며 두 번째 앨범에 대해 설명했다.
이날치는 판소리에 기반을 두고 있는 자신들의 음악을 ‘퓨전 국악’ 등 국악의 테두리 안에 놓는 것을 거부해 왔다. 대신 팝이라고 하기엔 밴드 구성이 독특한 만큼 대안적·실험적 대중음악을 추구하는 얼터너티브 팝(alternative pop) 밴드라고 설명하고 있다. 보컬을 맡고 있는 안이호는 “우리 목표는 판소리를 하는 것도, 전통을 살리는 것도 아닌, 함께 모여 할 수 있는 가장 재미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이라며 “음악적으로 어떤 것이 좋을지 그에 맞는 목소리를 찾는 과정”이라고 덧붙였다. 장영규 역시 “판소리가 바탕이 되는 음악이지만 결국 우리가 하고 싶은 건 팝 음악”이라면서 “퓨전 국악이라는 카테고리에서 벗어나고 싶어 얼터너티브 팝이라고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신곡들 역시 리드미컬한 베이스와 중독성 있는 후렴구 등이 특징인 ‘이날치 스타일’을 살리되 몽환적 느낌을 주는 록 음악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더했다. 신곡들 가운데 이날치가 최근 무대에서 살짝 선보인 ‘히히하하’는 벌써부터 후렴구를 흥얼거리는 사람들이 나올 정도다. 장영규는 “연습 때 멤버 아이들이 놀러왔는데, 이 곡을 듣고 춤추는 것을 보면서 ‘이거다’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이날치는 지난달 영국, 네덜란드, 벨기에, 헝가리 등 4개국 투어 공연을 마쳤다. 영국에선 세계적인 록 밴드 유투(U2)와 콜드플레이의 프로듀서로 유명한 대중음악계 거물 브라이언 이노가 이날치 공연장을 찾았다. “이날치의 노래는 음과 음 사이를 자유롭게 미끄러지듯 오간다”는 이노의 감상평이 인상적이었다고 이날치 멤버들은 전했다. 이노는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에 맞춰 춤을 춘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 영상을 보고 콜드플레이에 소개해 협업을 성사시킨 주인공이기도 하다.
장영규는 “이날치가 ‘범 내려온다’를 계기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지만, 국내에서 밴드 음악은 대중음악계에서 활동할 수 있는 무대가 거의 없다. 그래서 자꾸 팝 시장 안에 밴드가 포함된 해외를 찾게 되는 듯하다”면서 밴드 음악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