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디자이너 황지해(46)씨가 영국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정원박람회인 ‘첼시플라워쇼(Chelsea Flower Show)’에서 한국의 지리산을 전시한다.
영국왕립원예협회(RHS)는 지난 20일(현지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 5월 22일부터 열리는 ‘2023첼시플라워쇼’의 ‘쇼가든(Show Garden)’ 부문에 황 작가의 신작 ‘치유의 땅: 한국의 산’이 최종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매년 30개 안팎의 정원이 전시되는 첼시플라워쇼에서 쇼가든은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내년 쇼가든 부문에는 황 작가의 작품을 포함해 총 12개의 정원이 전시된다. 이날 발표된 쇼가든 라인업을 보면, 첼시플라워쇼에서 14개의 금메달을 받은 크리스 비어드쇼를 비롯해 ‘첼시플라워쇼의 왕’으로 불리는 마크 그레고리, 런던올림픽공원 설계자 사라 프라이스, 영국의 스타 가든디자이너 개빈 맥윌리엄스 등이 포함됐다.
황 작가는 동양인으로는 유일하게 쇼가든에 출품한다. 그가 전시할 작품은 한국의 어머니산인 지리산을 모티브로 한다. 지리산 동남쪽 산청 지역의 약초 군락을 정원으로 옮긴다. 황 작가는 “아침 햇살 속에서 약초들이 자생하는 고요한 산자락을 구현하려고 한다. 여기에 약초꾼들이 만든 작은 건조장도 배치할 계획이다”라며 “지리산에 자생하는 약초들을 정원에 도입해 자연의 다양성과 치유력을 얘기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영국왕립원예협회는 기자회견에서 “정원과 원예가 우리의 건강과 웰빙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고 환경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주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황 작가의 작품에 대해 “1000여종의 자생 약용식물이 자라고 있는 지리산 주변의 생태계를 조성한다”며 “황지해가 고국에서 진행한 생태복원 프로젝트가 어떻게 토종 식물들의 멸종을 방지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는지 강조한다”고 소개했다. 영국 BBC는 이날 황 작가의 작품을 보고 한국 정원에 대한 영상을 만들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황 작가는 2011년 처음 참가한 첼시플라워쇼에서 ‘해우소: 근심을 털어버리는 곳’이란 작품으로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금메달을 받았다. 2012년에도 ‘고요한 시간: DMZ 금지된 정원’으로 금메달과 그 해 신설된 회장상을 휩쓸었다.
그는 한국 토종 식생을 위주로 한 자연주의 정원을 구현하면서 한국적 이야기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동안 일본이나 중국 등 동양정원의 대표 국가들에 가려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정원의 우수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현재 경기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는 황 작가의 원형정원 프로젝트 ‘달뿌리-느리고 빠른 대화’가 전시 중이다.
첼시플라워쇼는 1827년에 시작된 유서 깊은 정원박람회로 ‘정원의 나라’ 영국에서는 윔블던 테니스대회보다 더 주목도가 높은 이벤트다. BBC가 대회 기간 내내 생중계를 하며, 영국 여왕이 매년 방문하는 행사로도 유명하다. 글로벌 기업들도 각종 후원 방식으로 참가해 마케팅의 장으로 활용한다. 올해는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저커버그가 후원한 ‘메타가든’이 금메달을 수상해 세계적 이슈가 됐다.
쇼가든 출품작들은 첼시플라워쇼의 중심부에 전시되며 관객과 미디어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게 된다. 메달 수상작은 전시가 시작되기 전날 발표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