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만에 사촌오빠 고소했지만… 피해자에 가혹한 재판[이슈&탐사]

입력 2022-10-24 00:02 수정 2022-10-24 00:02
친족성폭력의 몇몇 극단적 사례를 다루는 언론 보도는 대체로 피해자의 ‘인생’에는 무심합니다. 주로 수사보고서나 판결문을 인용하다 보니 범죄사실, 그러니까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지를 단편적으로 전하는 데 그칩니다. 이런 접근은 자칫 자극적 보도로 흐르고 가해자에 대한 단발성 비난으로 끝납니다. 그 일이 피해자의 삶에 어떤 파장을 일으켰는지, 그들이 신고와 사건 처리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 수 없습니다. 사건과 통계에 가려진 그들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여름 두 달여에 걸쳐 중·고등학생부터 딸을 키우는 50대 여성까지 17명의 생존자(살아남은 피해자)를 전국에서 만났습니다. 그중 10명이 현재 보호시설에서 살고 있는 10대, 퇴소한 지 얼마 안 된 20대입니다. 200자 원고지 3400장에 담긴 취재 기록은 저마다 삶을 일으켜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려고 애쓰는 이들의 해방일지였습니다. 그 일부를 5회에 걸쳐 전합니다. 이 보도로 지금 피해를 당하고 있거나 잠재적 위기 상황에 놓인 아이들, 과거의 상처로부터 해방되려는 이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감시망과 안전망이 강화되기를 기대합니다.
삽화=전진이 기자


나는 어두컴컴한 방, 딱딱한 의자에 앉아 있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맞은편엔 어떤 아저씨. 경찰일까. 그가 컴퓨터 모니터와 나를 번갈아 본다. 아저씨 뒤에 놓인 카메라가 나를 향하고 있다. 이 방의 한쪽 벽은 통유리다. 안심시키려는 듯 아저씨가 말한다. “여기 우리 말곤 아무도 없어. 아무도 안 보고 있어.” 그러니 편하게 다 얘기하라고. 어린아이는 저렇게 달래면 “네” 하고 믿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믿기지도, 편안하지도 않았지만 이 방을 나가려면 별수가 없을 거 같다. 당한 일을 다 털어놓고 나서야 풀려나듯 그 방을 나왔다. 그때 옆방 문도 열렸다. 우르르 복도로 어른들이 나왔다. 아무도 없다더니, 우리밖에 없다더니….

8년 전 시은(가명·18)양이 친족성폭력 사건 신고 후 겪은 일이다. 오래전이지만 꽤나 당혹스러웠던 경험이었던지 생생하게 기억했다. “차라리 솔직하게 다 얘길 해주지. 무슨 (범죄자) 수사하는 것도 아니고. 모르는 사람한테 자기 얘기 하는 건 쉽지 않은데 갑자기 어디 가서 진술해라, 그러면 당황하잖아요.” 시은양은 “좀 편안한 공간에서 아이들이 마음을 열었을 때 다가와주면 좋겠다”고 했다. 당시 시은양은 그 길로 보호시설로 옮겨졌다.

갑작스러운 분리

처음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건 그보다 어린 유치원생 때였다. 아빠에게 성폭력을 당했던 시은양은 엄마나 유치원 선생님에게 “아프다”고 얘기했다. 6살에 아동양육시설로 들어갔다.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그곳이 편할 리 없었다. 시은양 말고는 대부분 중고등학생이었다. 거기서도 괴롭힘을 겪었다. 결국 적응하지 못해 집으로 돌아갔다가 얼마 후 모자보호시설로 옮겼고 한 달 정도 지내다 초등학교 4학년쯤 지금 살고 있는 경북의 특별지원보호시설로 왔다. “거기 가면 (동갑)친구가 있다”는 얘기가 그나마 위안이 됐다고 한다.

어느덧 8년이 됐다. 지금은 이곳에서 또 다른 가족을 이뤄 즐겁게 지내고 있지만 원래의 가족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생활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처음엔 버려진 느낌이었다. 몇 년 뒤 잠시 만난 동생은 자신을 꺼렸다. “가족인데도 몰라요. 낯을 가려요 막. 얘를 어렸을 때부터 돌봤는데 나를 기억 못하고 무서워하는 거예요. 당황스러웠죠.” 그때 마음이 약해졌던 기억 탓에 그 뒤로는 동생을 만나지 않았다.

지난해 5월 발생한 청주 여중생 사건을 계기로 피해아동을 가족으로부터 즉각 분리하는 내용을 담은 아동학대처벌법 개정안이 지난 6월 발의됐다. 보호자가 자기 아이에게 강간, 유사강간, 강제추행 등을 저지른 경우 아이 의사와 관계없이 피해아동을 보호시설로 옮기는 내용이다. 갑작스러운 분리를 경험한 시은양은 예방 차원에서라도 형제자매를 함께 분리하는 식으로 아이가 받을 충격을 최소화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집으로 갈래요’ 하는 경우도 솔직히 집으로 가긴 싫은데 (보호시설이) 안 편하니까, 적응이 안 되니까 그게 힘들어서 그런다는 생각이 들어요. 전 집으로 간 적이 있기 때문에…. 중간에 (가해자를 제외한 가족과 함께 적응하는) 그런 과정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연기하듯 살았던 아이

고3 수험생인 시은양은 요리연구가를 꿈꾼다. 특수교사, 유치원교사, 제빵사를 거쳐 마음을 굳혔다. 한때 특수교사나 유치원교사를 희망했던 건 남을 위해 살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애니어그램(9가지 성격 유형 분류)을 보니 저는 남을 돕기보다 자기계발이 필요한 사람이더라고요. 이제 점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삽화=전진이 기자

더 어렸을 땐 자신을 숨기려고 밝은 척을 했었다. 슬프고 아프고 괴로운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기 싫었다. 이런 나를 알면 불쌍하게 볼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을 연기하듯 했다. 이런 태도를 버리고 마음의 원점으로 돌아와서야 ‘나를 위해 긍정적으로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한다. “지금은 ‘나 이렇게 아픈데도 잘 살아가고 있다’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거 같아요. 내가 보는 시선이 좋아지니까 바깥 시선도 좋아지는 것 같고. 의지가 생기는 것 같아요.”

시은양은 “피해자한테 초점을 맞춘다고 하는데 문제 해결(사건 처리)이 아니라 그 피해자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과거에 겪은 일이나 그때의 감정이 아니라 지금의 감정이나 삶의 계획을 더 물어봐주기를 그는 원했다. “가해자 처벌은 어른들 선에서 해결하면 좋겠어요. 그 문제는 (어른들한테) 넘겼으니까 더 이상 저한테 갖고 오지 않았으면 해요. 저는 새로운 나를 위해 노력해야 하니까요.”

그때도 지금도 보호받지 못했다

은주(가명)씨와 루나(활동명)는 어린 시절 상처를 어른들에게 넘겨주지 못했다. 어른들은 덮으려고만 했다. 그래서 스스로 성인이 돼서야 가해자에게 죗값을 물으려 했지만 법은 멀었다. 가장 큰 장애는 공소시효였다.

대표적 암수범죄로 꼽히는 친족성폭력은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말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2019년 발표한 통계를 보면 그해 친족성폭력 상담 87건 중 55.2%인 48건이 피해 발생 후 10년 이상 지난 일이었다. 성폭력특별법상 강간의 공소시효는 2007년 12월 21일 이후 범행이면 10년, 그 전 범행은 7년이다. 19세 미만 미성년자일 때 당한 성범죄는 피해자가 성인이 된 날로부터 공소시효를 따진다.


어릴 때 아버지나 형제에게 성폭행을 당하고도 감히 말하지 못하고 살다가 비로소 용기를 내서 입을 뗐을 땐 공소시효라는 버스가 이미 떠나 있을 가능성이 높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해 상담한 친족성폭력 사건 76건 중 44건, 57.9%의 공소시효가 끝나 있었다.

은주씨와 루나는 각자 첫 피해로부터 20여년이 지나서야 사법기관 문을 두드렸다. 어렵사리 첫발을 내디뎠지만 이후 과정은 “후회스럽다”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지난하고 고통스러웠다. 피해사실 대부분은 공소시효가 지나서 가해자에게 죄를 물을 수 없었다. 빙산의 일각 같은 범행에 대해서라도 법의 힘을 빌리려 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다.

미치지 않았다고 증명해야 하는 재판

“피고인은 고소인과 어린시절부터 무던하게 어울려 지냈다는 기억만 있습니다. 물론 짓궂은 행동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본인의 성적 만족을 위해 나쁜 행동을 지속적으로 한 건 추호도 없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기억에 남지 않았을 수 없고 또 어른들한테도 엄청 혼났을 겁니다.”

항소심 첫 공판이 열린 지난 20일 법정에서 사촌오빠 측 변호인이 변론하자 방청석에 앉아있던 은주씨는 무너져내렸다.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은 채 몸을 웅크리고 우는 그의 등을 어머니가 토닥였다.

은주씨는 어릴 적 일가친척이 모이는 명절 때마다 사촌오빠에게 추행을 당했다며 3년째 법정공방을 벌이고 있다. 대여섯 살 정도였던 처음엔 ‘그 일’이 소꿉놀이 같은 건 줄 알았다. 기분 나쁜 소꿉놀이. 하루는 놀라서 뛰쳐나간 은주씨를 사촌오빠가 주먹으로 때려서 울렸다. 어른들은 “왜 이리 시끄럽냐”고만 했다. 애들끼리 장난치다 저런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추행은 10년 넘게 이어졌다고 한다. 정말이지 큰집에 가기 싫었지만 명절이면 어김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가서는 사촌오빠를 봐야 했다. 부모는 사정을 전해 듣고도 “실수로 그랬겠지” 하며 심각성을 모르고 넘어갔다.

은주씨는 언젠가부터 제대로 잠들지 못했고 밤낮이 뒤바뀌면서 일상생활이 어려워졌다. 정신과 진료까지 받다가 고교 진학 두 달 만에 자퇴를 했다.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졸업하지 못하고 한국을 떠났다. 미국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악몽을 꿨고, 이불이 없으면 불안해서 잠을 자지 못했다. 40도를 웃도는 한여름에도 두꺼운 이불을 덮어야만 마음이 놓였다.

한국으로 돌아와 고소장을 냈을 때는 마지막 피해 이후 13년이 지나 있었다. 사촌오빠가 촉법소년(만 14세 미만)이었던 시기를 빼고 나니 죄를 물을 수 있는 건 그 뒤로 약 3년 사이 이뤄진 10번의 추행밖에 없었다. 이마저도 입증이 어려웠다. 1심 재판부는 강제추행치상, 그러니까 지속된 추행으로 정신적 상해를 입혔다는 혐의는 인과관계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상해 여부와 무관하게 강제추행 행위는 일부 실제 있었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봤지만 공소시효(피해자가 성인이 된 날로부터 7년) 경과로 ‘면소’ 판결이 났다. 검찰은 항소했다.

2년 넘게 이어진 재판 과정은 가혹했다. 법정에서 은주씨는 거세게 추궁당했다. 피고인 측은 “정신질환자의 진술, 그것도 약 14년 전 상황에 대한 진술을 믿기 어렵다” “고소인은 환각과 망상의 증세를 갖고 있었다”며 은주씨를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사람으로 몰았다. 서울 상위권 대학 입학과 혼인 사실까지 의심하며 증거 제출을 요구했다.

삽화=전진이 기자

지난 5월 처음 만난 은주씨는 “제가 장난을 하려고 외국인 친구들에게 탄원서 수십 장을 받아서 냈겠어요? 미국에서 멀쩡하게 직장 다니며 살고 있는 제 남편이 ‘장난’을 하려고 다 포기하고 여기 왔을까요”라며 오열했다. 이 자리엔 남편도 동석했다. 은주씨와 남편은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에서 2년 넘게 지내고 있다. 한국말이 다소 서툰 남편은 “미국에서 아동성범죄는 가장 최악의 것으로 다뤄진다”며 “미국도 완전하진 않지만 한국은 범죄자가 더 보호받는 느낌”이라며 이해할 수 없어 했다. 그는 “법정에서 이기더라도 아내는 죽을 때까지 꿈속의 도깨비로 힘들어할 거”라며 “많은 사람이 화를 내주고 법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피고인 측 변호사는 지난달 말 이슈&탐사팀과의 통화에서 “그런 추행 사실이 없고 (정신적 상해와의) 인과관계도 당연히 없다”며 “전체적으로 (고소인의) 진술 자체가 부정확해서 공소사실을 유죄로 보기에는 좀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나쁜 짓을 했다면 엄벌에 처해야 되는 게 맞지만 그 과정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재판에서 은주씨를 대신해 발언한 변호인은 “우리는 유년기 아동성폭력 피해가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다”며 “피해자들이 사회의 편견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는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보통사람의 수천배 에너지를 쓸 수밖에 없다”며 “더 이상 피해자가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을 들여야만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이날 공판을 마치기 전 판사가 “할 말이 있느냐”고 묻자 피고인은 짧게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는 재판이 끝나자마자 법정을 나갔다. 은주씨는 감정을 추스르는 듯 곧바로 일어나지 못했다. 법정을 나와서는 엉엉 소리를 내며 한참 동안 눈물을 터트렸다. “(피고인이) 기억을 못하지 않을 거예요. 절대 기억이 없지 않을 거예요”라고 그는 하소연했다.

그들이 버티는 법

법정다툼을 벌이는 이들에게 일상 회복이나 치유는 먼 얘기다. 은주씨 친척들은 사촌오빠 편을 들며 은주씨 가족에 등을 돌린 분위기다. 은주씨는 ‘집안 망치는 년’이 돼버렸다. 그들은 “우리 집안에서 절대 범죄자가 나오면 안 된다. 아무 일 없으면 너도 평안을 되찾을 거”라며 압력을 넣었다고 한다. 은주씨는 “가해자가 처벌을 받고 (제 얘기가 사실이라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받아야 트라우마 치료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릴 적 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루나는 “슬픔을 온전히 느끼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했다. 감정을 억누르고 살아온 탓에 슬픔뿐 아니라 기쁨 같은 감정도 제대로 느끼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몇 년 전 오빠와 함께 부모를 협박 혐의로 고소했다. 부친의 성폭력은 공소시효가 끝나서 손댈 수 없었다. 부모는 고소를 당한 와중에도 자식들에게 “대출받아서라도 돈을 달라”고 요구했다. 지난해 11월 1심에서 루나의 부모는 유죄를 선고받았다. 루나는 “협박도 정말 심한 것들은 공소시효(5년)가 지나 있어서 빙산의 일각으로만 유죄를 받았다”며 “성폭력 공소시효 지났다고 굉장히 의기양양해 하고 아주 조롱하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그 힘든 시기에도 가까운 이들이 주는 작은 친절이 모여 고통을 견딜 힘이 됐다고 루나는 말했다. 그는 “그 시기를 버티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나중에 ‘더 좋은 방법으로 이 시기를 버티지 못했어’라고 자책할 바엔 도움이 되는 건 뭐든지 하라고 말하고 싶다”고 조언했다.

※가정 내 학대로 고민하는 아동·청소년이나 이런 사례를 아는 분은 전화 1366(한국여성인권진흥원), 117(아동·여성·장애인 경찰지원센터), 02-2263-6464(한국여성의전화)로 연락하시면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슈&탐사팀 강창욱 이동환 정진영 박장군 기자 issue@kmib.co.kr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이동환 기자 huan@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