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병 형, 고시원 쓰레기방서 7년 은둔”…무슨 사연이

입력 2022-10-21 06:15
은둔형 외톨이인 친형이 7년간 고시원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동생이 공개한 형의 방 내부 모습. 각종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캡처

고시원에서 7년째 은둔형 외톨이로 지내는 30대 친형이 건강 악화에도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어 도와달라는 동생의 호소가 전해졌다.

21일 온라인에 따르면 늦둥이여서 친형과 나이 차이가 꽤 난다는 동생 A씨는 지난 19일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에 장문의 글을 올려 “형이 7년째 서울의 한 고시원 꼭대기 층에서 은둔형 외톨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은둔형 외톨이’는 사회·경제·문화적 요인으로 한정된 공간에서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생활하며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을 말한다. A씨가 공개한 형의 고시원 내부 사진을 보면 발 디딜 틈도 없이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A씨에 따르면 형은 자의로 집 밖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A씨와 가족이 그를 밖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 생활비를 장기간 끊어보기도 하고, 경찰이나 구급차를 대동해서 가보기도 했지만 소용없었다. 어머니가 며칠간 고시원 문앞에서 ‘제발 나와달라’고 울면서 빌기도 했다.

가족들의 이런 노력에도 형은 요지부동이다. 형의 방은 각종 음식물과 쓰레기로 가득 차 악취가 진동을 해 A씨와 부모가 직접 찾아가 온종일 치우곤 한다. 지방에 사는 A씨나 어머니가 매달 한 번씩 서울로 올라가 형의 생사를 확인하는데, 2년 전부터는 가족들이 찾아와도 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가족 대신 형의 집을 종종 방문해주던 경찰관은 “(형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전했다고 한다. A씨는 “형은 오히려 저와 부모님을 접근금지 시켜달라고 경찰분들께 몇 번이나 이야기했다더라”라며 “(가족의) 모든 연락 수단을 다 차단했고, 어머니와 제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배달음식으로만 7년째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지난 17일 어머니가 형을 찾아가 문 앞에서 3시간 동안 열어달라고 호소한 끝에 안전고리가 잠긴 상태에서 마주했는데, 형의 안색이 어둡고 눈썹이나 털을 다 밀었으며 살이 많이 빠져서 앙상한 상태였다고 한다. 형은 어머니에게 “이제 그만 죽을 거다. 그동안 죄송하다. 생활비 줄여도 된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은둔형 외톨이인 친형이 7년간 고시원에서 나오지 않는다며 동생이 공개한 형의 방 내부 모습. 각종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보배드림 캡처

형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된 데에는 사연이 있었다. A씨는 “형은 음악 전공으로 예중, 예고를 나왔다. 또래보다 심장 쪽이 약해 2년간 고등학교 휴학한 적이 있다”며 “뒤늦게 알았는데, 대학교 기숙사에서 선배들에게 지속적으로 폭행당한 뒤 자퇴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뒤엔 부모님 댁 방에서만 갇혀 살다가 8년 전에는 우울증으로 정신과 병원에 6개월 정도 입원했다”며 “형은 심장이 더 안 좋아져서 퇴원 후 집이나 길에서 혼자 쓰러진 적이 몇 번 있다. 형은 약물 과다 투여라고 주장한다. 형의 요청으로 두 번 정도 병원과 의료소송을 한 뒤 패소해 위약금을 물어준 적이 있다”고 했다.

이어 “당연히 이길 거라곤 생각 안 했다. 형을 위해서 저와 어머니가 유명한 변호사도 고용해주고 노력을 많이 했다”며 “소송에만 매달려온 형은 패소하고 나서 낙심을 많이 했는지 7년 전에 어머니와 크게 싸우고 집을 나가 은둔 생활을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현재 형은 심장에 제세동기를 넣어야 하는 상태인데, 치료도 받지 않고 은둔한 탓에 상태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있다.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킬 수 없는 탓에 A씨와 가족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A씨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형을 빼내기 위해 어떤 방법을 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며 “서울에 있는 사회복지센터와 지자체, 대학병원 및 정신병원 등에 문의했는데 빼낼 방법이 마땅치 않더라. 이대론 형이 고시원에서 고독사할 것 같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하는 게 최선이냐”고 조언을 구했다.

최근 은둔형 외톨이가 사회 문제로 인식되면서 8개 광역·기초단체에서는 은둔형 외톨이 지원 또는 재활 촉진 조례를 제정했다. 그러나 이들을 상담장으로 끌어내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이들이 다시 사회 일원으로 나설 수 있도록 지자체나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