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전, 아프리카에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한국을 찾은 목사가 있다. 혈혈단신으로 후원자를 찾기 위해 한국을 찾은 그는 무작정 문이 열려있는 교회를 찾아 우연히 여의도순복음교회(이영훈 목사)에 들어갔다. 마침 교회에서는 금요철야기도회가 한창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커피자판기 앞에서 한 자매를 만나 나눈 대화를 나눴고, 이를 계기로 자매를 포함 지인들이 10년간 아동 결연 후원자가 됐다. 후원자들은 중고 영어 교과서와 학교 봉고차, 우물펌프 설치까지 물심양면으로 이방인 목사를 도왔다. 이것이 한국과 인연의 시작이었다.
비행시간만 20시간 넘게 걸려 한국에 방문한 목사는 아프리카 국가인 탄자니아 출신인 글로리어스 쇼우(58) 목사다. “(탄자니아에서 하는) 사역은 점점 커졌지만, 이를 감당할 재정은 턱없이 부족했어요. 이를 놓고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 몇몇 나라를 보여주셨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이었어요.(웃음)”
세계오순절대회(PWC) 참석차 방한한 쇼우 목사는 “(대회에서) 성령의 은혜를 느끼는 시간이었다”며 “하나님께서 부어주신 은혜에 감사하다”고 참석 소감을 전했다. 그는 탄자니아 하나님의 성회(TAG) 소속교회가 200개가 넘는 킬리만자로 지역의 감독을 역임했다. 국민일보는 18일 서울 모처에서 쇼우 목사를 만났다.
그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22살에 개척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시작했다. 그는 인생의 절반이 넘는 40여년 동안 킬리만자로 인근 도시인 모시(Moshi)에서 목회와 다음세대 구제 사역에 온 힘을 쏟고 있다. 쇼우 목사는 “2001년 기도를 하던 중, 하나님께서 담임 목회를 내려놓고 고아와 가난한 아이들을 돕는 사역을 하라는 응답을 받았다”며 “경제적으로 너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곧바로 작은 집을 임대해 14명의 고아를 돌봤다. 쇼우 목사 부부는 고아뿐만 아니라 미혼모와 출생 직후에 버려진 아기들까지 돌봤다. 그렇게 몇 달 만에 41명으로 늘어났다. 그는 ‘뉴라이프 재단(New Life Foundation)’을 세우고 사역 범위를 넓혀 교실과 기숙사로 쓸 수 있는 건물을 임대하여 유·초등 기숙학교인 ‘희망의 샘(Fountain of Hope)’을 세웠다.
그가 본격적으로 학교 사역을 시작한 해인 2002년, 아프리카는 후천성면역결핍증(AIDS)과 전쟁 중이었다. 유엔에이즈계획(UNAIDS)이 발표한 아프리카의 에이즈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 에이즈 감염자가 320만명에 달했고, 한해에만 230만명이 사망했다.
쇼우 목사는 “탄자니아도 후천성면역결핍증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순간에 부모를 잃은 아이들이 길거리로 내몰렸다”며 “갈 곳 없는 이들을 위해 학교와 기숙사가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는 사역의 시초였던 영아원 ‘삶의 샘(Fountain of Zoe)’과 10대 미혼모를 위한 시설인 ‘기쁨의 샘(Fountain of Joy)’, 선교훈련 단체인 ‘사랑의 샘(Fountain of Love)’를 설립했다.
“지금까지 캠프를 거쳐간 학생들만 1500명이 넘어요. 아이들이 이곳에서 돌봄과 쉼을 얻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 성화 되는 순간을 마주하는 것이 가장 행복합니다. 선생님, 버스 기사, 요리사, 경비원 모두 주님 안에서 다시 태어난 이들이에요.”
코로나19를 거치며 뉴라이프재단은 재정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다. 800명이었던 학생들은 300명까지 줄었다. 경제불황으로 후원자들의 도움도 점차 줄어들었다. 그래도 쇼우 목사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지금까지 고난이 없었던 적은 없었어요.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기적같이 채워주셨어요. 그래서 섣불리 포기하거나 비관하지 않아요.”
쇼우 목사에게 앞으로의 비전에 대해 물었다. 그는 “성장하는 아이들의 미래까지 책임져 주님의 훌륭한 일꾼으로 준비시키고 싶다”며 “더 나아가 기독교 대학과 선교센터를 세우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글·사진=유경진 기자 yk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