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절단에, 1살 여아 참변도…‘어르신 운전’ 어쩌나

입력 2022-10-21 00:02
지난 18일 경북 영덕군에 위치한 한 휴게소에서 80대 운전자가 몰던 제네시스 차량이 사고를 낸 모습. 영덕소방서 제공

지난 18일 오후 12시28분쯤 평화롭던 경북 영덕군 한 휴게소에 위치한 계단으로 제네시스 차량이 돌진했다.

차량은 주차된 차량 1대와 행인들을 잇달아 추돌한 뒤에 멈춰 섰다. 사고로 휴게소 계단을 내려오던 50대 행인은 두 다리가 절단되는 큰 부상을 입었다.

영덕경찰서 등에 따르면 사고를 낸 운전자는 80대 남성이었다. 운전자는 “엑셀을 브레이크로 착각했다”고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초고령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둔 한국에서 고령 운전자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해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광주에서는 지난 14일 오후 1시43분쯤 80대 후반 운전자가 몰던 소나타가 중앙선을 침범해서 마주오던 쏘렌토 차량을 들이받았다.

쏘렌토 차량 뒷좌석에 타고 있던 60대 후반 동승자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운전자는 음주 상태는 아니었지만 현장에서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는 취지로 사고 경위를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2월 부산 수영팔도시장 입구에서 80대 A씨가 운전하던 그랜저 승용차가 주차 차량, 야쿠르트 전동카트, 60대 여성, 18개월 유아와 충돌한 사고현장. 부산경찰청

지난해 12월에는 부산 수영팔도 시장에서 80대 운전자가 몰던 승용차가 할머니와 18개월 된 손녀를 치어 숨지게 하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운전자는 제동장치 결함을 주장했지만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운전자 조작 과실로 판단된다는 결론을 내렸다.

지난 3월 80대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부산의 한 버스정류장을 덮쳐 1명이 사망한 현장. 서부경찰서 제공

지난 3월에는 80대 남성이 운전하던 차량이 오후 2시 40분쯤 부산의 한 도로변 버스정류장을 덮쳐 버스를 기다리던 시민 1명이 숨졌다.

고령운전자 사고 4년 만에 19.2% 증가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가 지난 8일 낸 ‘고령운전자 연령대별 교통안전대책 합리화 방안’ 보고서를 보면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 발생건수는 증가 추세다.

65세 이상 고령운전자 사고는 2017년 2만6713건에서 2021년 3만1841건으로 19.2% 늘었다. 반면 64세 이하 운전자의 사고 발생건수는 18만9622건에서 17만1289건으로 9.7% 감소했다.

연구소가 고령운전자를 5세 단위로 그룹핑해 분석한 결과 교통사고 위험도 수치는 65~69세부터 점진적으로 증가하다가 80세 이후부터 급격하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고령운전자 사고의 경우 치사율이 높은 특징을 보였다. 최근 5년간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 100건당 사망자수는 2.54명으로 65세 이하(1.46명)보다 높았다.

이밖에 한국자동차연구원에 따르면 교통사고 사망자 중 가해자가 고령 운전자인 경우는 2020년 23.4%로 2016년 17.7%보다 높아졌다.

지난 2020년 기준 운전면허 소지자 중 65세 이상 비율은 11.1%인데 사망사고 유발 비율은 더 높은 것이다. 다른 연령대에 비해 더 치명적인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한국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 고령운전자 사고는 더 빈번하게 일어날 가능성이 높지만 정부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경찰과 각 지방자치단체는 운전 면허증을 자진 반납할 경우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 하지만 지자체별로 인센티브 지급액이 최대 5배까지 차이나는 등 중구난방으로 시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 박성민 의원이 17개 시·도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지원금은 각 시도별로 10만원~50만원까지 차이가 나고 대상 기준 역시 만 60세~75세 이상으로 제각각이다.

각 지자체의 면허 반납률도 2%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연령대별 맞춤형 정책, 교통 복지혜택 병행돼야”

다만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운전자의 운전을 강도 높게 제한하는 것은 자칫 고령층의 이동권을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고령운전자의 연령대별 맞춤형 정책을 실시하는 한편 교통취약 지역 이동성 확보, 무료 버스 및 택시 요금 지원 등 혜택이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한다.

삼성화재 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사고 위험성이 비교적 적은 60~69세의 경우 적성검사 주기는 10년으로 늘리고, 70~79세 3년(현행 유지), 80세 이상은 1년(현행 3년에서 축소)으로 차등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영국의 경우 80세 이상은 적성검사를 매년 시행하고, 호주도 75세 이상은 매년 적성검사를 한다.

면허 반납에 대한 인센티브를 연령대별 차등 적용하는 방안도 제시된다. 80세 이상의 경우 병원, 약국 할인 등 맞춤형 복지혜택을 추가로 제공할 수 있다.

또 농어촌 등 교통취약 지역 중심으로 대중교통 서비스를 확대하는 등 대안 마련도 요구된다.

전남 목포시의 경우 노인 등을 대상으로 공공형 100원 택시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 같은 정책을 다른 지자체에서 확대 시행할 수도 있다.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조준한 수석연구원은 “운전면허 자진반납 고령운전자 대상으로 지자체가 자체 운영하는 택시 등 교통 수단 서비스를 저렴한 비용 또는 무료로 이용하게 하는 등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