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취임한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재무장관이 교체된 지 닷새 만에 트러스 총리의 정치적 동지였던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장관이 19일(현지시간) 돌연 사임했다. 교육·통상 장관의 사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어 트러스 총리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이날 브레이버먼 장관이 취임 43일 만에 사임했다고 보도했다. 브레이버먼 장관은 총리에게 보낸 사직서에서 “개인 이메일로 공문서를 보내 규정을 위반했다. 실수를 저질렀고, 책임을 지겠다”고 밝혔다. 쿼지 콰텡 전 재무장관의 경질로 지난 14일 제레미 헌트 재무장관이 임명된 데 이어 2번째 장관 교체다.
브레이버먼 장관이 사퇴한 표면적인 이유는 규정 위반이지만 그는 사직서에서 트러스 총리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그는 “우리가 실수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실수한 것을 모두가 보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마법처럼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는 것은 진지한 정치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트러스 총리는 브레이버먼 장관의 사의 표명 직후 후임으로 그랜트 섑스 전 교통장관을 지명했다. 섑스 전 장관은 최고소득세율 폐지 등 트러스 총리의 대규모 감세안을 비판하는 ‘반트러스’ 정치인 중 하나다. 블룸버그 통신은 “총리직을 유지하기 위한 트러스의 극단적 조치”라고 평가했다.
트러스 총리는 더욱 궁지에 내몰리게 됐다. 보수당에서는 트러스 총리의 자진사퇴를 공식적으로 주장하는 의원이 7명으로 늘었고, 내부에서는 트러스 총리를 교체하기 위한 계획을 논의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민심도 좋지 않다. 온라인 설문조사업체 유고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트러스 총리에 대한 호감도는 10%에 그쳤다. 80%는 그가 ‘싫다’고 답했다. 영국 타블로이드 매체 데일리스타는 최근 트러스 총리와 유통기한 열흘짜리인 양상추 중 어느 쪽이 더 오래 갈 것 같냐는 여론조사를 실시해 ‘양상추 총리’라는 별명도 생겼다.
AP통신은 “노동당이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어 보수당은 내년 총선에서 참패를 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을 트러스를 교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전했다.
트러스 총리는 감세안이 실수였다고 사과하면서도 사퇴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이날 하원에서 열린 질의응답에서 “나는 싸우는 사람이지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라며 총리직 사수를 재확인했다.
트러스 총리가 자진 사임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며 보수당의 머릿속도 복잡해지는 모양새다. 트러스 총리 교체를 두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는데 현재 언급되는 불신임투표는 현실화 가능성이 낮다. 의원내각제인 영국은 여당 당원들이 총리를 뽑기 때문에 교체가 어렵지 않지만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결국 내각의 집단 사퇴가 결정적인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도 내각이 줄줄이 사표를 던지며 압박하자 자리에서 물러났다.
박재현 기자 j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