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네 발]은 동물의 네 발, 인간의 발이 아닌 동물의 발이라는 의미입니다. 도심 속에서 포착된 동물의 발자취를 따라가겠습니다.
도시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동물은 무엇일까? 아마 비둘기일 것이다. 사람과 차를 두려워하지 않고 도로를 당당하게 지나다닌다. 이런 모습을 빗댄 ‘닭둘기’라는 말이 인터넷 등지에서 유행했다. 한 번 날갯짓할 때마다 초당 100마리의 세균이 퍼진다는 믿기 힘든 소문이 돌았다. 혐오 동물로 낙인찍힌 비둘기는 어디에서 왔을까.
과거 큰 행사의 식순에는 ‘비둘기 날리기’가 포함된 경우가 많았다. 평화를 상징하는 하얀 비둘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은 좋은 볼거리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는 2400마리가 하늘로 날아갔다. 1986 서울아시안게임 개막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도민체전이나 전국체전 같은 행사의 레퍼토리였다. 문제는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
도시에 터를 잡고 자기만의 사회를 꾸려나가기 시작했다. 열성 유전자인 하얗던 깃털은 번식을 거듭하며 도시의 콘크리트를 닮은 회색이 됐다. 인간이 버린 음식물이나 모이를 먹으며 빠르게 번식했다. 주변 환경에 따라 1년에 최대 4회에서 6회까지 알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수컷의 정소가 커서 번식 확률이 높은 데다가 알에서 깨어나 한 달이 지나면 둥지를 떠난다.
이런 강력한 번식력 탓에 전국은 비둘기로 뒤덮였다. 2021년 기준 전국 126만 마리에 이른다. 정부는 먹이를 주거나 한강에 집을 지어주는 등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파트 실외기에 둥지를 틀거나 건물에 배변하는 등의 피해를 주는 일이 벌어졌다. 배설물이 금속이나 건물의 외벽을 부식시킨다. 악취와 소음 역시 문제다. 뒤늦게 심각성을 깨달은 환경부는 2009년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했다. 포획과 살상이 가능해졌고, 먹이를 주는 사람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민간에서도 여러 가지 대책을 마련했다. 매 울음소리를 틀거나 독수리 모형을 걸어 두는 등의 이색적인 퇴치법이 인터넷에서 이슈가 됐다. 퇴치 전문업체까지 등장했다. 실외기나 베란다에 앉지 못하게 퇴치망이나 뾰족한 핀을 설치한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해결되고 있지 않다.
전문가는 개체수를 줄이는 데는 사냥보다 먹이를 주지 않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스위스의 바젤에서 진행된 연구가 이를 증명한다. 당국과 동물보호단체가 협력해 먹이를 주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인 결과 개체수가 절반 이하로 줄었다. 최근에는 알을 낳지 못하게 하는 성분이 포함된 이른바 ‘불임 모이’를 주는 방법이 제기됐다.
우리 정부는 아직 개체 수를 줄이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있지 않다. 공원 등에 ‘먹이를 주지 마세요’라고 쓰인 현수막을 달아놓는 정도다. 이는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실제로 공원 등지에서 먹이를 주는 사람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제 정부가 나설 필요가 있다. 사람이 번식시킨 것이나 다름없으니 사람이 해결해야 한다. 먹이를 주는 행위를 강하게 규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을 때 비로소 도시 생태계의 일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대로라면 영영 하늘의 쥐로 남게 될 수밖에 없다.
유승현 인턴기자 onlinenews1@kmib.co.kr